서로 다른 작품 활동의 길을 걸어온 두 예술가, 고경래와 조금진 작가가 한 공간에서 ‘부부전’이라는 이름으로 나란히 섰다. 마침 부부의 날이었던 지난 21일 두 작가를 만났다.   경주 황리단길 갤러리 란(대표 김정란)에서 기획해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고경래·조금진 부부초대전은 각자의 예술세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해 온 두 중견 작가가 서로를 독려하며 살아온 동반자로서, 또 경주라는 도시를 삶과 작업의 터전으로 삼아온 예술가로서의 작업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특별한 기록이다.    오랜 세월 각자의 전시와 연구, 교육 활동을 이어왔지만 ‘부부’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건 전시는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한다.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눈앞의 풍경과 마음속 풍경이 벌이는 밀당을 견디는 일”이라는 고경래 작가의 이 말은 이번 전시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조금진 작가는 “삶은 곧 색채이고 색채는 에너지이며 생명”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은 경주의 산과 강, 왕릉과 바다에서 ‘원풍경’을 찾고 다른 한 사람은 천과 염료 속에서 생명의 파동을 길어 올린다.   고경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오히려 서로의 작업이 대비되면서 재미있는 구성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시장에서는 두 사람의 작품 세계가 극명하게 대비돼 보인다.   고 작가의 그림은 경주 남산과 왕릉, 형산강, 감포 바다를 모티프로 삼지만 실경 재현에 머물지 않는 ‘원풍경’이다. 눈으로 본 대상이 아니라 풍경과 마주한 순간 자신의 내면에서 되살아나는 본질적 기억의 풍경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일본 도쿄예술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공공디자인과 지역문화 프로젝트에도 깊이 관여해 왔다.   오랜 시간 동양화를 공부해 온 고 작가는 최근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전통 수묵 중심의 화면에서 벗어나 색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의 색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우리 근대 화가들이 사용했던 색감에 도달하게 됐다”는 그의 최근 작업은 동양화적 붓질과 서양화 재료가 만나 독특한 화면을 형성한다. 형태를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 색과 면, 붓의 움직임으로 경주의 정서를 표현한다.   “중요한 것은 대상을 얼마나 정확히 그리느냐보다 풍경과 내가 마주할 때 내 안에서 떠오르는, 원래 내 안에 있던 풍경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경주가 있지만 동시에 개인의 기억과 감성이 녹아 있다. 관람객들이 그의 그림을 보며 오래전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근대 풍경화를 떠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 작가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자신의 회화적 방향성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완성하려고 애쓴 그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온 그림들인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아마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더 큰 화면에서도 이 감각을 확장해 보고 싶다”   반면 조금진 작가의 화면은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 석사, 일본 국립도쿄예술대학 대학원 석사와 박사를 마친 그는 국내 섬유미술 분야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과 경주시청 등에 소장돼 있다.   그의 작업은 일반 회화가 아닌 섬유염색이라는 독특한 장르 위에 구축돼 있다. 열대식물과 새를 모티프로 한 ‘Flower of Equator’, 도시의 노을을 담은 ‘Sunset’, 여름밤 불꽃과 사람들을 표현한 ‘Firework’ 시리즈 등은 모두 생명과 에너지라는 주제 아래 이어진다.   조 작가는 자신이 섬유를 작업 재료로 선택한 배경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찾는다. “어머니와 함께 빨래하고 이불을 만지던 시간이 많았다. 하얀 천에 대한 친밀함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천을 다루는 작업이 늘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미술의 길은 늦게 시작됐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미술학원에 등록했고 이후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섬유염색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염색은 한 번 실수하면 되돌릴 수 없는 작업”이라며 “실크 위에 염료가 번지며 만들어내는 강렬한 색과 빛은 생명의 에너지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이 강렬한 원색과 추상적 화면으로 변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열대식물이나 새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 안에 있는 에너지와 선, 색을 뽑아내고 싶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Sunset’과 ‘Firework’ 연작 역시 자연과 도시 풍경 속에서 발견한 생명의 에너지를 추상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이다.   조 작가는 “제 삶은 굉장히 단조롭고 반복적이지만 그 안에는 늘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에너지가 있다”며 “그것이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작품만큼이나 특별하다. 일본 유학 시절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선후배로 인연을 맺었다. 고 작가는 “유학생활에 지쳐있던 시기에 한국에서 온 ‘봄’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고 회상했고 조 작가는 “입학 준비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활짝 웃었다.   결혼 이후 예술가 부부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삼남매를 키우며 작업을 이어가야 했고 경제적·현실적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고 작가는 “아내는 비교적 늦게 작업을 시작해서인지 늘 자신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더 열심히 작업한다”고 말했다.   아내 조 작가 역시 “전시 기회가 생기면 남편이 꼭 참여하도록 격려한다”며 “저희에게 작품 활동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로가 계속 작업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응원하는 것이 부부로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과 일본,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지만 삶의 중심은 늘 경주였다. 고 작가는 “경주는 작가가 살기에 참 좋은 도시”라고 말한다.   조 작가는 “우리에게 경주는 여전히 여행지 같은 도시”라며 “고분과 숲, 유적과 일상이 공존하는 풍경은 늘 새로운 영감을 준다”고 했다.   실제로 두 사람의 작품에는 경주가 깊이 스며 있다. 고경래 작가의 원풍경에도, 조금진 작가의 생명 풍경에도 결국 경주라는 공간이 ‘후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한 사람은 경주의 풍경을 마음의 기억으로 번역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기억 위에 생명의 색채를 입혔다. 예술가로서, 부부로서, 경주를 사랑하는 시민으로 살아온 두 사람의 시간은 이번 전시에서 나란히 하나의 풍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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