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말로 시작한다. 요즈음 점심 식사 후 남는 시간은 걷기가 제법인 날씨다. 더구나 시내 알천변의 산책길은 주변의 나무와 풀들로 싸여 있어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난 듯하다. 물론 삼림의 환경에 비할 수야 없지만, 걸을 때면 천변길의 고마움을 느낀다. 그런데 한 가지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반려견의 배설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길잃은 동물들이나 야생의 동물이 살지 않기에 이것은 반려견의 배설물이 확실하다.   알천변 사이로는 주거시설과 상가 시설 등이 뒤섞여 있다. 따라서 점심나절의 산책길에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주민들, 그리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는 직장인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방치된 그 배설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반려견인가? 아니다. 당연히 반려견과 함께하는 인간, 즉 우리들 자신이다. 부끄러운 시민의식을 볼 수 있다. 관광 도시 경주는 APEC 행사 이후 찾아오는 손님들이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우리 도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런 부끄러운 시민의식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살다 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사람을 만난다. 그중에는 꼭 함께 있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고마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하려 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에 대한 역(逆)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 할 때 고민이 시작된다. 그는 내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이해관계에 얽힌 갑(甲)이라는 존재일 수도 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주도면밀하다. 따라서 때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로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신선함에 푹 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러한 사람들은 교묘하기에 당시의 말이나 행동을 전혀 예상치 못하다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한 대 얻어맞는다. 그것이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말과 태도였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마리아나 해구와 같은 심연의 곳으로 뛰어들어 그러한 말이나 행동 아래에 있는 것을 곧바로 알아챌 수 있다면, 피치 못할 이유로 나와 함께 하는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즉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을 기술한 로버트 새폴스키의 책 『행동』에 언급된 모든 것, 특히 인간 본성을 우리가 샅샅이 알고 있다면? 만일 그럼에도 인간 본성의 법칙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손해일 뿐이다. 논어 학이편에서 맹자는 “우물가에서 놀던 어린아이가 빠졌을 때 우리는 어느 누가 어린아이를 구해달라 하지 않더라도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애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라는 조건이 생략되어 있다.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나머지 인류에게 바라지 않는 것을 그 자신에게 바라지 않는다.”라는 바뤼흐 스피노자의 말처럼, 거대한 자연 안에서 너와 나는 ‘공생의 동반자적 관계’가 우리의 본성일 것이다. 즉 내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다른 모든 너희들도 자유롭고 행복해져야 한다. 우리는 공감이라는 느낌, 즉 사랑하고, 도와주고, 좋아하고, 친절을 베푸는 능력을 자연적으로(천부적으로) 부여받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친구나 가족 동료와 함께 즐겨야 한다.   물론 여기에도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라는 전제조건이 있기는 하다. 때론 감정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우리는 본능적으로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라고 하지만, 이성의 지배가 우리에겐 보편적이다. 조직이나 사회에서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보며, 우리는 이들에게 ‘시민의식’(civic virtue)을 갖췄다고 말한다. 시민의식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그렇다면 반려견과 함께하는 우리 중 부끄러운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행동하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덜 쓰기를 원한다. 우리 뇌의 편도체가 우리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반려견의 배설물을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반려인의 편도체가 활성화된다. 이 상황에서 전두엽이 활성화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편도체는 우리에게 그 불편한 자리를 얼른 피하라고 채찍질한다. 편도체만 활성화한 상태에서, 즉 아무런 조치 없이 그곳을 떠나는 우리는 부끄러운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게끔 전두엽이 활성화하려면 더욱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훈련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원전의 조종사나 비행기의 조종사는 위기 상황이 닥칠 때를 대비하여 시뮬레이션 훈련을 하곤 한다. 올바르게 무의식적으로 행동(조치)할 수 있도록 주기적이며 반복적으로 한다. 원전의 물리적 보안을 책임 짓는 시큐텍(주)의 직원들도 위기 상황에 대비해 이렇게 훈련한다. 시민의식을 갖추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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