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끝자락이 남아있는 어느 날이었다. 산책을 하느라 아침 일찍 동네에 위치한 고등학교 교문 앞을 지나칠 때였다. “까르르! 까르르!” 허공을 가르며 들려오는 해맑은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등교를 하는 한 무리의 여학생 모습 때문이었다. 이 때 그들 자태에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 한 착각에 순간 눈이 부셨다.
뿐만 아니라 발랄하고 청초한 모습의 여고생들을 대하노라니 그 주변이 흡사 청정지역에 온 느낌이었다. 마치 문명의 휘황한 불빛마저도 여고생들이 있는 장소를 비껴가는 듯했다. 
 
다시금 눈을 비비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어느 누구도 찾은 적 없는 원시림 같은 순수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마음이 상쾌하고 풋풋했다.
한편 이들이 장차 이 땅의 미래를 오롯이 한 몸에 짊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학교에서 학문을 갈고 닦은 후 사회에 나오면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낼 인물들이다. 
 
또한 가임기에 놓인 그들이기에 훗날 결혼을 하면 숭고한 모성애를 지닌 어머니가 될 몸이다. 그러고 보니 저네들이야말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빛나는 이 땅의 별들이었다.
만인이 숭상하는 밤하늘의 별이다. 인간이 별과 같은 경이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선 세상의 모든 불가능마저도 아우르고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강한 의지와 크나큰 꿈, 그리고 희망 및 젊음과 예지(叡智)를 간직할 때만 가능하다.
흔히,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논란이 일곤 한다. 즉 남자에 의하여 여성의 임신이 가능하다고 우긴다. 이에 반해 여성이 있기에 새 생명이 탄생 할 수 있다고 맞받아치기 예사이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히 모든 것을 갖춘 남자라 하여도 새 생명의 잉태 및 출산은 신체 조건상 해 낼 수가 없다. 반면 여성 역시 남자 없이는 혼자서는 임신이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요즘 난임 부부들을 위하여 시험관 시술까지 등장 하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하여도 그 시험관 시술역시 모체가 필요하다. 이로보아 새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며 양육하는 일은 여성만이 해낼 수 있는 위대한 일이다. 먼 훗날 이 일을 해낼 여학생들 아닌가. 
 
그러므로 이들은 별보다도 더 존귀하다. 이런 귀하디귀한 그들이기에 사회로부터 누구보다 신변 안전을 보장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린 여성을 비롯하여 소녀들의 안전 보호엔 늘 소홀했다. 뉴스를 도배하는 스토킹 살인 및 성폭력, 성희롱이 이를 방증한다.
이렇듯 여성 및 여학생 신변 보호를 강조 하는 것은 여인은 모든 인류의 어머니여서이다. 오죽하면 신이 갈 수없는 곳에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까지 있을까.
그럼에도 한창 피어나는 한 떨기 꽃과 같은 꿈 많은 여학생의 목숨을 해친 일이 있었으니 참으로 통탄스럽다. 얼마 전 광주에서 일어난 여고 2학년인 여학생 살인 사건이 그러하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는 여학생에게 살의를 품었다. 그리곤 미리 준비한 흉기를 휘둘러서 잔인하게 살해했다. 
 
알고 보니 그 범인도 실은 20대 꿈 많을 청년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가해자인 이 젊은이는 가슴에서 별을 상실하고 살아온 듯하다. 미래에 대한 포부도 삶의 목적도 없다보니 평소 죽음을 떠올린 게 분명하다. 혼자서는 차마 죽기가 싫어서 남의 귀한 목숨까지 노렸노라고 자백 했잖은가.
아무리 현대가 인명경시(人命輕視) 세태라고 흔히 말하지만 타인의 소중한 생명을 한낱 파리 목숨처럼 함부로 가벼이 여기다니…. 만약 그 날 그 여고생이 이 범인 손에 목숨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저토록 별처럼 빛나는 친구들과 함께 어깨를 겨누며 활기찬 모습으로 학교 교문을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생각에 이르자 낮에도 영롱하게 빛날 별 하나가 이 땅에서 스러진 듯하여 왠지 못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