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진료를 하다 보면, 아이보다 먼저 흔들리고 있는 부모를 만나게 된다.“아이가 학교 다니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게임만 하려고 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너무 불안해합니다.” “화를 조절하지 못합니다.” “ADHD가 의심된다고 합니다.” “요즘은 웃는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그러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면, 아이만 힘든 것이 아니다. 부모 역시 지쳐 있고, 마음의 짐도 무거워져 있다. 밤마다 검색을 반복하고, 혹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잘못 키운 건 아닐까”라는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한다.나는 ADHD·불안·우울·행동문제로 힘들어하는 청소년 진료에서 가능하면 부모 상담을 먼저 충분히 진행하려 한다. 그리고 이후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가장 필요한지 함께 천천히 정해간다.이 이야기를 하면 가끔 이렇게 묻는 분들이 있다. “정신과는 원래 환자를 먼저 보는 것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정신의학에서 환자를 직접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표정과 말의 흐름, 감정의 결은 직접 만나야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청소년 정신건강의학에서는 조금 다른 관점도 필요하다. 청소년은 혼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불안 속에서 흔들리고, 가정의 긴장 속에서 지쳐간다. 관계의 공기는 생각보다 깊게 아이의 마음에 스며든다. 실제 진료에서는 아이의 증상만큼이나 부모의 불안도 치료의 흐름을 크게 흔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부모는 사랑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아이가 뒤처질까 두렵고, 상처받을까 걱정된다. 그러나 그 불안이 깊어질수록 아이는 사랑보다 압박을 먼저 느끼게 된다.“왜 아직도 못 하니?” “빨리 좋아져야 할 텐데…” “약을 먹으면 좀 나아지는 거 아니니?”부모는 걱정의 마음으로 말하지만, 아이는 때로 그것을 통제와 압박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치료는 그 긴장된 관계 속에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실제로는 부모 상담이 시작되면서 아이가 먼저 안정되기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모의 불안이 조금 낮아지고 관계의 긴장이 완화되면, 아이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기도 한다.그래서 나는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청소년을 곧바로 데리고 오라고 말씀드리지 않는다. 특히 요즘 청소년들은 이미 충분히 지쳐 있다. 학교와 학원, 수행평가와 시험, 친구 관계와 SNS까지. 아이들의 하루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과밀하다.그런 아이를 갑자기 데려와 오랜 시간 검사와 상담을 이어가는 일은 아이에게 또 하나의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아이들은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가 문제가 있어서 끌려왔구나”라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그래서 먼저 부모를 만난다. 아이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부모를 탓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기 위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조금 더 안전한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부모 상담이 먼저 이루어지면 청소년 진료는 훨씬 깊어진다. 초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증상 자체가 아니다. 성장 과정과 학교생활, 가족 갈등과 학업 스트레스, 행동 문제와 부모의 불안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부모 상담 없이 바로 아이 진료를 시작하면 진료실은 쉽게 아이의 마음을 만나는 공간이 아니라 문제를 정리하는 공간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부모 상담이 먼저 이루어지면 이후 청소년 진료에서는 조금 더 중요한 일이 가능해진다. 바로 아이의 마음을 만나는 일이다.“왜 그랬니?”보다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말이 먼저 가능해진다. 문제를 정리하는 데 쓰이던 시간이 관계를 만드는 시간으로 바뀐다. “나를 평가하려 하는구나”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려 하는구나”라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치료의 지속성이다. 부모가 충분히 이해하고 치료를 시작하면 중도에 멈추는 일이 줄어든다. 정신과 치료와 약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조금씩 덜어진다. 결국 부모 상담은 ‘추가 서비스’가 아니다. 아이가 조금 더 안전한 마음으로 치료를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다.우리는 종종 아이를 빨리 바꾸려 한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은 기계처럼 수리되지 않는다. 아이의 마음은 관계 속에서 다치고, 관계 속에서 회복된다. 좋은 부모란 완벽한 부모가 아니다. 아이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부모다.그래서 청소년 치료는 아이를 데려오는 순간이 아니라, 부모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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