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간단한 수술을 받은 뒤 아침저녁으로 항생제와 소염진통제를 챙겨 먹고 있습니다. 끼니마다 약을 챙기는 일이 생각보다 번거롭다 보니, 옆에 놓인 커피로 무심코 약을 넘길 때도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지인이 “약을 커피랑 먹어도 돼요?” 하고 놀라 묻더군요. 속으로는 ‘뭐 별일 있겠어’ 싶으면서도, 은근히 마음이 걸렸습니다. 정말 괜찮을까요? 커피는 그저 잠을 깨우는 음료처럼 보이지만, 사실 카페인은 몸속에서 매우 활발하게 작용하며 여러 약물과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강력한 약리학적 물질입니다.그동안은 ‘카페인이 심장을 빨리 뛰게 하니 약과 함께 먹으면 좋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상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를 살펴보면,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카페인과 약물이 간에서 분해되는 통로를 두고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간에서 약을 분해하는 효소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카페인이 먼저 그 통로를 차지하면 약이 제때 분해되지 못하고 몸속에 더 오래 머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약은 카페인의 분해를 막아 커피 한 잔만 마셔도 서너 잔을 마신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불안해지기도 합니다.소염진통제는 카페인과 만났을 때 오히려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기도 합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이나 이부프로펜 같은 진통제는 카페인과 함께 복용하면 흡수가 빨라지고 통증 완화 효과도 조금 더 커집니다. 그래서 시중의 복합 진통제 가운데는 카페인이 들어 있는 제품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먹는 항생제는 이야기가 전혀 다릅니다. 특히 퀴놀론계 항생제는 간에서 카페인 분해를 강하게 억제합니다. 약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이 몸 밖으로 잘 빠져나가지 못해 불면이나 심한 두근거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쩐지 요즘 저녁에 커피를 마시면 유독 잠이 안 오더라고요.어떤 약은 커피 때문에 애초에 흡수 자체가 방해되기도 합니다. 갑상선 호르몬제나 골다공증 치료제를 복용한다면 아침 커피를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커피 성분이 이 약들과 장 안에서 물리적으로 결합해 혈액으로 흡수되는 길을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약은 커피와 함께 복용했을 때 흡수율이 절반 수준까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뼈를 튼튼하게 하려고 챙겨 먹은 약이 커피 한 잔 때문에 제대로 흡수되지 못한다면 참 허무한 일입니다. 빈혈 때문에 먹는 철분제 역시 커피 속 탄닌과 만나면 흡수가 크게 떨어집니다.혈압약이나 당뇨약처럼 매일 복용하는 약도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약을 먹는다면 커피를 피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카페인이 혈관을 수축시키고 아드레날린 분비를 자극해 약효를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커피를 완전히 끊기 어렵다면 적어도 매일 마시는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날은 여러 잔을 마시고 어떤 날은 전혀 마시지 않는 식으로 들쭉날쭉하면 약효 역시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특히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리튬 같은 약은 몸속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안전합니다. 커피 섭취량이 갑자기 달라지면 약 성분이 과하게 쌓여 독성이 생기거나, 반대로 농도가 떨어져 약효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평소 커피를 얼마나 마시는지 주치의에게 꼭 알리고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가장 안전한 원칙은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약은 충분한 양의 물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약을 먹었다면 최소한 한두 시간 정도는 커피와 간격을 두는 습관을 들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 시간이면 대부분의 약이 일차적인 흡수 과정을 마치고 혈액 속에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약이 커피 한 잔 때문에 헛수고가 되지 않도록, 커피를 마시는 타이밍과 양에 조금만 더 신경 써 보세요.오늘 들으실 곡은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5번, op.132입니다. 후기 현악 4중주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깊고 절실한 작품으로 꼽힙니다. 흔히 하일리거 당크게장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3악장 악보에 베토벤이 직접 적어 놓은 메모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정확히는 독일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적혀 있었지만 뜻은 분명합니다. 병에서 회복한 뒤 신에게 드리는 감사의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이 한마디만으로도 곡 전체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집니다. 1825년 봄부터 여름까지 꽤 오랜 병치레를 했습니다. 4월부터 8월까지 이어진 그 시간은 결코 가벼운 고통이 아니었던 듯합니다. 곡을 듣고 있으면 단순히 아팠다는 사실보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전해집니다. 절망을 과장해서 그리기보다 고통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얻게 되는 조용한 감사와 평온을 들려줍니다.1악장은 느린 서주 뒤에 본격적인 알레그로가 이어집니다. 구조가 꽤 독특한데 네 음으로 된 짧은 동기가 곡 전체를 붙잡고 끌고 갑니다. 들을 때는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귀를 맡기고 있으면 어떤 생각 하나가 계속 마음속을 맴도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몸의 고통과 긴장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희망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무겁고 거칠게 다가오던 흐름이 마지막에 이르면 놀랍게도 밝고 찬가처럼 변해 갑니다. 단순히 아픔을 쏟아내는 데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 여기서도 분명해집니다. 
 
2악장은 스케르초입니다. 빠르고 경쾌하지만 완전히 들뜬 표정은 아닙니다. 웃고는 있지만 아직 숨을 조금 고르는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큰 병을 앓고 난 뒤 처음 바깥 공기를 쐬는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완전히 풀어지기 전의 조심스러운 생기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다가옵니다. 마냥 환희만 외치는 음악보다 이런 절제된 밝음이 오히려 더 진하게 마음에 남기도 합니다. 
 
중심은 단연 3악장입니다. 아주 느리고 찬송가를 닮은 선율이 조용히 펼쳐집니다. 종교적인 분위기가 짙고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듯합니다. 여러 구간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아픈 몸으로 기도하듯 머무는 순간과 조금씩 기운을 되찾는 순간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회복의 감사에 이르는 과정이 길고 깊게 이어집니다. 베토벤의 음악 가운데서도 가장 숭고한 페이지 중 하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화려해서 감동적인 것이 아니라 진심이 너무 깊어서 숙연해지는 종류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악장은 짧은 행진곡입니다. 앞선 3악장의 성스러운 정적에서 갑자기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을 줍니다. 처음에는 조금 뜻밖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이 다시 땅으로 내려오고 다시 일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회복이란 결국 다시 살아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지막 5악장은 론도입니다. 특별한 기교를 과시하기보다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음악은 끝까지 밝고 생기 있습니다. 승리를 과장해서 외치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안도감을 담담하게 전합니다. 그래서 더 진실하게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