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제가 여성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된 적은 없습니다. 인간 세상을 살펴보면 다이어트 열풍이 만연하여 어느덧 남녀노소 없이 이것이 삶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살찐 이들은 마치 짐승처럼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날씬하고 군살이라곤 전혀 없는 저 같은 여인들이 미인이라고 칭송받는 세태인지라 제 가치가 더욱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비로소 이제야 제 몸매에 대한 찬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날 저를 향한 당신들의 눈빛은 그야말로 무관심 그 자체였습니다. 하긴 현 상태로는 뜯어먹을 살점이라곤 한군데도 없는 만큼 저는 생선으로서 그런 홀대를 받아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저도 한때는 여러분들처럼 봄날이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갓 잡았을 땐 얼마 안 되는 살이지만 지금보다는 그 상태가 양호했습니다. 그 탓에서인지 여러분들은 저보다는 등이 시퍼런 살점이 도톰한 생선들을 선호하기 바빴던 게 사실입니다. 그것을 먹으면 건강은 물론 아이들 두뇌 발달에 유익하다며 등 푸른 고등어, 삼치, 꽁치 등을 사랑했지요. 저는 솔직히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는 그런 물고기들에게 심한 질투심을 품었습니다. 무엇보다 같은 어류 중에 고등어가 참으로 밉습니다. 저는 항상 빈한하고 힘들게 삶을 살아온 하층민들의 면모에 빗대어지곤 했기 때문입니다.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제대로 못 먹어 외양이 멸치처럼 바짝 말랐다” 라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컬을 땐 늘 빠트리지 않고 제 모습을 소환했고 이름 또한 빗댔잖습니까? 그러나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르 흐르고 배가 불뚝 나온 사람의 육신은 항상 “고등어 토막처럼 실하다.”라고 말하곤 했지요. 늘 고등어를 풍족한 사람들의 표상으로 삼곤 했잖습니까? 그땐 억울했습니다. 이런 말을 당신네들에게 들을 때마다 고등어나 저나 같은 바다 속에 사는 어류로서 왜? 멸치인 저는 아무리 플랑크톤을 억수로 먹어대도 좀체 살이 오르지 않는지 그런 유전자를 제게 물려 준 조상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지요. 바다에서 어부에게 잡혀 뜨거운 물에 삶아져 강한 햇살에 건조되다보니 제 몸은 이렇듯 그나마 있던 살점도 한 점 없이 바짝 말랐지요. 이래봬도 마른 장작이 화력 좋다고 여러분들에게 이바지하는 일이나, 그 효용가치는 여느 생선이 저를 능가하지 못한답니다. 그러 하온 즉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만으로 그 가치를 결단코 매기거나 함부로 평가 하진 말아주십시오. 가만히 보면 당신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구석이 많습니다. 먼저 첫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상대방의 전부인 양 판단하는 오류를 늘 저지르곤 하는게 그것입니다. 첫인상이 대인관계에 중요하니 뭐니 하잖습니까? 왜? 그토록 첫인상이 안겨주는 상대방 정보에 자신의 총명한 눈빛을 흐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경우엔 그 수초 동안 이뤄진 첫인상 탓에 지혜로운 사람, 마음자락이 넉넉한 사람도 때로는 우매하게, 옹색한 사람으로 각인시키기 예사 아닙니까? 외모는 부모님이 물려준 선천적인 것이므로 성형을 하여도 타고난 관상에 따른 운명은 바뀌지 않다는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한사코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에 연연하여 성형을 위해 뼈를 깎고 살을 베어내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실은 저도 지난날 고등어처럼 푸짐한 몸뚱이를 지녀보려고 무던히 애썼답니다. 플랑크톤을 양껏 먹어보기도 하고 어느 땐 바다 속에서 다른 어류들의 먹잇감을 슬쩍슬쩍 가로채어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몸매와 체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감히 인간인 당신들에게 충고하건대 너무 외모지상주의로 치닫지 마십시오. 어차피 인간은 양면성을 가진 존재라 아무리 겉을 요란히 치장하여도 형체, 냄새, 무게도 없는 마음은 도무지 인간의 눈으론 간파하기 어렵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입니다. 인간인 당신들에 비하여 멸치인 저는 그런 면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 자랑을 늘어놓자면 아시다시피 바짝 마른 외모와 달리 제 가슴은 바다보다 더 넓습니다. 우주를 품었다고 하면 제 자신에 대한 자랑이 너무 지나칠까요? 제 자랑 하나로써 저는 여러분 식탁 위에 단골로 오르는 각종 찌개의 주원료인 ‘다시’라는 국물에 없어서는 안 되는 몸입니다. 바짝 마르고 살점이라곤 전혀 없는 저이지만 그 맛은 비린내 물씬 풍기는 여느 생선과 하늘과 땅 차이지요. 제가 여러분들 입맛을 살리는 생선으로 자리매김 하는 일을 손꼽자면 이러합니다. 우선적으로 된장찌개, 매운탕 등에 필요한 재료로 저를 물에 넣고 뜨거운 불 위에 올려 몇 시간이고 푹 끓입니다. 비로소 그때야 그토록 형편없이 메말랐던 제 몸이 제 살을 뜨거운 물속에 한껏 풀어서 제 몸 세포마다 함유된 영양분을 다 쏟은 후에야 제 원형을 되찾습니다. 뜨거운 물에 퉁퉁 불은 제 몸은 이제 옛날의 그 몸은 아닙니다. 다만 몇 점도 안 되는 살일망정 제 몸에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이미 제 살이 아닙니다. 물고기로서 멸치로서 제 맛은 완전히 뜨거운 물에 한껏 우려져서 마치 나무껍질을 씹는 듯한 맛이 날 게 뻔합니다. 이때 여러분들은 제 몸 속의 단물을 다 뺀 후 별 볼일 없다고 건져서 버리기 일쑤이잖습니까? 이는 뜨거운 물속에서 제 모든 것을 아낌없이 그 속에 몽땅 녹인 저에 대한 대우로선 너무 비인간적인 처사입니다. 어차피 당신들에게 바친 제 몸, 제 머리및 뼈까지 몽땅 씹어 먹으십시오. 당신들은 누군가를 위해 저처럼 온몸을 녹이는 희생을 치른 적 있습니까? 어디 이뿐입니까? 겨울철 김장철마다 제 주가는 상당히 오르는데 짜디짠 소금에 제 몸을 온통 절여서 제 뼈와 안타까우리만치 빈약한 살점을 우려내 액젓까지 만들어 줍니다. 강한 소금기에 제 몸을 내맡길 때 그 엄청난 고통은 인간인 당신들이 겪는 인고의 고통과 아마도 맞먹으리라 짐작합니다. 당신들에게 부탁할 게 있습니다. 칼슘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저를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달 볶아 먹는데 이땐 아무리 생명 없는 제 몸이지만 당신들이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여태껏 저는 누군가를 제 몸처럼 닦달하고 괴롭힌 적 없습니다. 남을 존중해야 자신도 품격이 올라갑니다. 왜 걸핏하면 당신들은 아무런 죄 없는 사람을 마치 프라이팬에 저를 볶듯 달달 볶습니까? 누군가가 당신들보다 월등한 점이 있으면 시샘하기 앞서서 상대방의 뛰어난 면을 본받으려고 애써 보십시오. 그 점이 훨씬 당신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지혜로운 길입니다. 저야 이미 타고난 운명이 당신들 곁에 늘 자리하면서 제 몸이 건조되고 뜨거운 물속에 빠져 제 살과 뼈를 우려내고 뜨거운 그릇 속에서 볶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인 당신들은 이런 일들은 피해야겠지요. 이성, 지성, 교양, 높은 지식까지 갖춘 당신들이 저와 같은 처지로 곁의 사람을 전락시켜서야 되겠습니까? 누군가를 미워할 때 열등감을 느낄 때, 짓밟고 일어서고 싶은 경쟁자가 나타났을 때 잠깐 제 처지를 생각해 주세요. 당신들에 의해 죄 없는 누군가가 꼭 제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그래도 그런 행위를 일삼고 싶다면 그것은 필경 부메랑이 되어 당신에게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됩니다.그것을 흔히 인과응보라고 하던가요. 멸치의 간절한 부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