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줄박이나 풀 메뚜기나 명주나비나애기똥풀이 되어버린 아이연초록 자작나무숲이 되어버린 아이5월 들판이거나산골짜기 된 아이사람 세상의 투명 인간 되어생각도 말도 지워버린 아이다른 행성의 아이사람 세상 중증 발달 장애아 위탁원에 맡겨두고 이승을 떠난 어미뒷산에 왔네 뻐꾹뻐꾹중증 발달 장애아 위탁원엔천사 아이 하나 맡겨두고이승 떠난 엄마가 찾아와서한낮이 이울도록뻐꾹뻐꾹뻐꾹-서대선의 시 '중증발달장애아 위탁원 뒷산에 와서 우는 뻐꾸기'
 
서대선 시인의 최근 시집, '에올리언 하아프'를읽는다. 시집속에 중증 장애아 위탁원 뒷산에 와서 우는 뻐꾹새 이야기가 있다. 한마디로 가슴이 저릿해 오는 슬픔의 시다. 슬픔의 가시가 목에 걸려 간절하면서도 아름답다.
중증발달장애아를 두고 이승을 떠난 어머니, 위탁원에 맡겨두고 떠난 천사 같은 자식이 걱정되어 뻐꾹새가 되어 뒷산에 와 울고 있다는 내용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심플한 시. 그러나 시의 깊이는 엄청나게 깊다. 아, 시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왜 한 편의 시를 읽는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시를 읽는 사람'과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이다.
시를 읽는 사람들은 문화적 갈증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고. 삶을 넉넉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다.
요즘 시는 어렵고 재미가 없다고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독자들의 마음에 맞는 시를 썼다고 그러한 시가 모두 좋은 시는 아니다. 읽기가 어려운 시편들 중에도 좋은 시가 많다.
한편의 좋은 시에는 그 시인의 삶을 바라보는 철학과 인생을 보는 태도가 담겨 있다.
우리는 중증장애인의 부모 심정을 잘 모른다. 그 고통과 슬픔의 뿌리는 얼마나 깊을까?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뒷동산에 와 우는 뻐꾹새는 잘 아는 모양이다. 모찰트의 레퀴엠(진혼곡) 같은 뻐꾹뻐꾹, 눈물방울처럼 떨어지는 그 청각적 이미지… 봄 하늘에 번지는 불타는 노을같은 그 울음이 바로 시다.
'곤줄박이나 풀메뚜기나 명주나비나/애기똥풀이 되어바린 아이/5월 들판이거나/산골짜기가 된 아이/생각도 말도 지워버린 아이/다른 행성의 아이' 뻐꾹 뻐꾹!! 봄 하늘이 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