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났다. 당선자와 낙선자들의 마지막 인사치례로 내걸린 현수막이 지난 시간의 결과를 말해주고 있다. 이제 유권자는 왕이 아니다. 선거전만 하더라도 고개를 숙이던 후보자들이 이제 아무곳에서나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갑을' 관계가 역전됐다. 이제 유권자들이 당선자를 만나려면 고개를 숙이고 약속을 정하고 어렵게 만나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앞으로 4년을 철저하게 '을'로 살아야 한다. 새삼 지도자의 덕목이 선택의 순간이 끝났음에도 떠오르는 것은 '을'들의 소박한 바램이기 때문이다.   하나, 선거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군상을 접한다.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볼 일을 본 후의 마음이 다르듯이 인간의 심리변화는 본성으로 이어진다.  뽑고나니 정치철학조차 없는 인물임을 알았고 공익보다는 사익에 몰두하고 권한을 휘두르면 권위가 살아나는 줄 알며 봉사가 아니라 군림하는 지도자를 만나게된다.  선거를 비롯 정치제도가 그렇게 만들고 있고 그런 분야에 순응한 인물이 당선되는 구조가 되고 있다. 약삭빠른 자와 조삼모사 한 자들이 조연으로 등장해 그들을 철저하게 둘러싸고 논공행상으로 전리품을 나누는 행태가 아련거린다. 당 태종때 재상이었던 이사는 태종이 이민족의 등용을 제한하려 할 때 태산불양토양 하해불택세류라고 간언했다.  태산은 한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으며 넓은 바다는 한줄기 세류의 물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없다고 한 것이다. 인재등용에는 니편 내편을 따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거가 끝난 작금에 전국의 자치단체들은 새로운 판짜기로 돌입할테고 일말의 정치철학을 가진 지도자라면 태산불양토양 하해불택세류를 한번쯤 꼽씹어 봐야 한다. 선거때 고개숙여 표를 구하려던 초심이 살아 있다면 말이다.  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말해 주듯이 공자의 세한연후에 지송백지후조 처럼 송백이 늦게 시듬을 이해한다면 장무상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랜세월이 지나도 서로 잊지 않는 포근함이 있어야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배신이야 일상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상이라 하지만 선거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간관계의 배신은 본인의 인생관을 수정해야 할 만큼 커다란 충격이다. 한마디로 '그럴 수 가 있느냐'는 탄식으로 귀결되고 남에게 말 못할 혼자만의 넋두리로 끝나지만 당사자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선거를 치른자만이 느낄 수 있는 선거판에서의 인간관계를 결코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셋, 지도자의 덕목은 포용이다. 정치철학을 가진 지도자라면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넓은 마음으로 보듬어야 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다.  지도자가 선거과정에서 응어리진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유권자들은 다시 철저하게 소외받는 기나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땅의 주인이라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는 주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거때의 호칭이고 교과서에서나 언급되는 용어일 뿐이다.  신라사회가 골품제로 흘러왔듯이 성골과 진골 나아가 6두품과 5두품 4두품을 제외한 이름뿐인 3두품 2두품 1두품의 주민은 신라사회의 주인이었지만 존재조차 희미한 투명인간이었다. 신라사회를 지탱해준 노역의 대상일 뿐이었다.  오늘날 선거이후의 주민 역시 선출된 권력자들의 눈에는 그저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 해 줄 들러리일 뿐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주민의 대표라고 할 때는 '나'라는 존재가 필요하겠지만 그 외는 딱히 필요없는 존재가 유권자라는 주인이다. 4년 뒤에나 찾게 될 존재가 아닌 오늘의 주인으로 마주하길 기대해 본다. 그래서 지금은 포용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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