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를 읽고 자란 60대 이상 세대에게 아마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그리 낯설지 않을 듯합니다.    자만심에 빠진데다 사치스럽기까지 한 임금님 앞에 두 사기꾼이 나타나 엄청나게 아름다운 천으로 옷을 지어 드리겠다고 제안하며, 다만 이 천은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천이라고 합니다. 사기꾼들이 옷을 짓는 것을 보고 오라고 임금님은 수시로 신하들을 보냅니다.    신하들의 눈에는 재단사들이 옷감도 없이 허공에서 옷 짓는 시늉 하는 것만 보고도 하나같이 자신이 어리석은 멍청이로 보이지 않으려고 옷이 잘 만들어지더라는 거짓 보고를 합니다. 새로 지은 옷을 임금님에게 입히고 거리 행진을 하는 날, 임금님의 눈에도 사람들의 눈에도 옷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다만 행렬을 구경하던 인파 속에서 한 어린이가 ‘임금님이 왜 옷을 벗고 있지?’라고 크게 소리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감추려고 진실을 슬그머니 외면하지만 아직 세상 먼지에 더럽혀지지 않은 어린이만이 사실을 사실대로 지적했습니다.    반면에 이런저런 이해관계에 얽히거나 자신의 허명이 노출될 것을 두려워하는 대중들은 서로 눈치를 봐가면서 슬그머니 군중 심리에 합승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벌거벗었다는 사실이 탄로나버린 임금님은 언제 옷을 입었을까요? 어린이들이 읽을 동화라기에는 담고 있는 교훈이 많이 무겁습니다. 자기도취에 빠진 어리석은 임금님은 사기꾼을 분별할 눈이 없어 오히려 그들의 놀림거리가 됩니다. 주위 사람들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유불리를 따져서 어리석은 임금님에게 사실을 깨우치는 대신 그의 어리석음에 동조해 버립니다.    엇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서로가 서로를 적당히 견제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는 세상의 처세술을 아직 모르는 어린아이만 잇속을 셈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전달합니다. 벌거벗은 채 거리 행진을 하면서도 으스대는 임금님들은 지금도 곳곳에 존재합니다. 이웃나라 어떤 임금님은 자기 허명(虛名)을 남기려고 자기 얼굴을 박아 넣은 화폐를 새로 발행하겠다든지 기념비적인 건물 이름을 자기 이름을 넣어 바꾸기도 하고 공공건물 안에서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는 싸움판을 벌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임금님은 엄연히 금지하는 법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기표한 투표용지를 들고 기표소 밖으로 나와 중인환시리에 노출하고도 뭐가 문제냐고 강변합니다.    게다가 관련 기관조차 그런 행동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임금님의 옷을 칭송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를 못하고 밤이 늦도록 대기를 한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 놓고도 환경 보호 운운하며 변명하기에 바쁩니다. 그런 임금님들이 어디 하나둘뿐이겠습니까? 나 역시 난 그런 임금님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할 자신이 없습니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을 칭찬하는 말은 기분에 흡족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말에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속에 담아 두었다가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이 실수를 하면 자신의 그때 기분을 그대로 돌려주려 합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자랑거리 주머니는 가슴께에 달고 못난 언행 주머니는 등 쪽에 달고 나오기에 자기의 못난 점을 보기 어렵다더군요, 그렇지만 성찰이라는 자기 성장의 도구를 꾸준히 사용하면 등 뒤에 있던 주머니를 앞쪽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답니다. 그에 더해서 달콤한 말에 현혹되지 않고 쓴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성숙함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6‧3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후유증이 만만치 않습니다. 엄격하고 전문적이어야 할 전담 기관이 보여준 실수도 아마추어 같지만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다 이런저런 변명으로 대처하는 뒷수습은 더 허술해 보입니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를 못해 참정권을 거부당했다고 20,30 세대의 젊은이들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뉴스 미디어들은 벌써 며칠째 해당 투표소 앞에서 사람들이 시위하고 있다고 연일 보도합니다.    직원을 뽑는 데 친인척에 특혜를 주어 기용한다든가 선거철이 임박하면 휴직하는 직원이 부쩍 늘어난다든가 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문제점이 드러났어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유야무야하고 넘긴 것이 지금의 방만한 시스템을 더 조장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벌거벗은 선관위에 벌거벗었다고 말해주는 매운 목소리가 없어서 종국에는 이런 사태가 생긴 건 아닐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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