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기안동 140~1번지에 가면 고려시대 문신이자 수원백씨의 중시조인 백천장(白天藏)의 묘가 있다.    그는 수원백씨의 시조 백우경의 후손으로 고려시대 문과에 급제한 후 조정에서 한림원 정4품 학사로 왕명을 받들어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과거를 관장하며 서적을 편찬하였다.    또한 서연관으로서 왕에게 강의하고 시종하는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으며 국정을 논의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이후 원나라에 유학하여 이부상서를 거쳐 우승상·금자광록대부 등 높은 벼슬을 역임하다 원나라의 순제에게 나이가 많아 고국에 돌아갈 것을 청하여 귀국한 후 수성백(隨城伯)에 봉해졌다.    그런 후 수원에 살다가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이 소식을 들은 고려 충선왕이 애도하는 마음에 예관을 보내 제사를 치르게 하고 문익(文益)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백천장의 묘는 기안동 기안초교 뒤편의 산줄기에 동향으로 부인 월성 최씨와 함께 합장으로 모셔져 있다. 조선 정조 때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華山)으로 옮기면서 융릉(隆陵)으로부터 10리 이내의 산소는 모두 이장하게 되었으나 그의 묘소는 조정에서 보호하여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 묘역은 경기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어 있고 평소에는 개방을 하지 않아 문이 닫혀 있으므로 수원백씨 종중이나 관리인에게 사전에 연락을 취해야 볼 수 있다.    백천장 선생 묘역은 근래의 정화공사로 각종 석물이 새로 제작 배치되어 고려 후기의 묘제 양식을 찾아볼 수 없다. 오래된 석물로는 묘표, 장명등, 소형 문인석 1쌍이 전부이고 묘표는 선생의 17세 후손인 백홍수가 1813년에 세웠고 장명등과 소형 문인석은 조선 초의 작품이다. 이곳은 백천장이라는 인물과 경기지역 주요 토착 성씨의 묘역을 살펴볼 수 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곳의 산세는 한남정맥 군포시 수리산(475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이 의왕시의 구봉산(145.3m)을 지나 화성시 칠보산(238.5m)에 이른다.    백천장의 묘소는 칠보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내려와 묘소 뒤 금형체의 고금산(98.9m)을 일으켜 현무봉이 되었다. 좌우의 청룡과 백호는 높이 면에서 낮은 감이 있으나 나름 갖추어져 있고 특히 백호 자락은 혈장 앞까지 뻗어 내려와 묘역을 감싸주고 있어 안쪽의 생기를 잘 갈무리해주고 있다.    그리고 혈장 앞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저수지가 있고 이 물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물로 땅속에서 자연적으로 용출되어 나오는 물이라고 한다. 풍수에서는 혈장 앞에 이러한 물을 지당수(池塘水)라 하고 굉장히 귀하게 여긴다.    지당수의 형성은 용맥의 생기를 보호하면서 땅속으로 따라온 원진수가 샘물이 되어 혈 앞에서 지상으로 용출된 것이다. 계수즉지(界水則止)의 원칙하에 혈장 앞쪽에 물이 있으면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지기를 멈추게 하니 혈장에는 늘 생기가 가득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후손들의 발복을 위해 묘지 앞에 인공으로 연못을 파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는 혈장의 생기를 누설시키게 되므로 금기 중의 금기다. 풍수고서 『人子須知』에서도 혈장 앞에 지당수를 파거나 매우면 용혈에 상처를 입혀 생기를 누설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화(禍)를 자초한다고 하였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