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웅변대회 나가기 위하여 쓴 원고 내용이 새삼 기억에 떠오른다. 당시 6월 25일이 다가오자 도에서 개최한 웅변 대회였다. 이 대회에 앞서서 웅변 원고를 직접 썼었으나 지금은 그 내용 첫머리만 기억 날 뿐이다. 그 구절을 돌이켜보자면 이러하다. ‘아! 산 좋고 물 맑아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자랑하던 우리나라에 1950년 6월 25일 새벽, 민족 가슴에 총칼을 겨누며 쳐들어온 북한 공산당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집니다.’ 가 그것이다. 그 때 웅변 원고 내용을 서툰 글 솜씨로나마 완결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어머니가 들려준 6.25 전쟁 당시 겪은 이야기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14살 때 6.25 전쟁을 겪었다고 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나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비롯 이모, 외삼촌 등 6식구가 부랴부랴 서둘러서 피난길에 올랐단다. 딱히 별다른 교통 수단이 없던 그 시절, 우마차에 식량과 가재도구 및 이불 등을 싣고 떠나는 피난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고 했다. 어느 날엔 북한 인민군들이 발사하는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어머니 귀를 스쳐갔다는 말엔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피난길에 만난 어느 까까머리 어린 북한군 이야기엔 등줄기에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그 인민군은 총부리를 외가 식구들에게 겨누며 먹을 것을 달라고 하더란다. 이때는 꼼짝없이 가족 전체가 몰살당할 거라는 두려움에 온 몸이 얼어붙었다고 하였다.    심지어 어머니를 비롯 어린 이모 외삼촌은 옷에 소변까지 지렸다고 했다. 다행히 아껴온 삶은 감자가 있어서 인정 많은 외할머니는 그것을 통째로 그에게 건넸다고 했다. 그러자 그 북한 병사는 겨눈 총을 거두고 허겁지겁 감자 몇 개를 게 눈 감추듯 먹더니 감자 보따리를 부둥켜안고 숲속으로 달아났다고 했다. 또한 저만치 앞서가던 피난 행렬 중에 많은 사람이 북한 괴뢰군의 폭격에 맞아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기 예사였단다.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굶주림이었다고 했다. 우마차에 싣고 온 쌀가마니엔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아서 멀건 죽으로 연명하였고, 반찬이 없어서 소금을 물에 타서 그릇째 마시곤 했단다. 요즘도 어머니가 겪었던 지난 6.25 사변 시 생활상을 떠올릴 때마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음식들이 참으로 아깝기 그지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두고 삶의 터전인 집이 무자비한 폭격에 의하여 순간에 잿더미로 화하던 지난 6.25 전쟁 참상이었다. 이로 인하여 한반도가 초토 화 되기도 하였다. 어디 이뿐인가. 아직도 이북에 남겨진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들이 그 한을 풀지 못한 채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이 부지기수이다. 필자의 아버지도 부모형제를 함경남도 함흥에 두고 온 분이다. 생전에 그들을 못내 그리워 하다가 아버진 십 수년 전 세상을 등졌다. 필자는 이런 민족의 한을 안겨준 6.25 전쟁을 직접 겪진 못했다.    하지만 피난민들이 전쟁터에서 겪은 증언을 통하여 피눈물 나는 전쟁의 고통에 대하여 미뤄 짐작 할 수 있었다. 이게 아니어도 얼마 전 읽은 한 권의 책에서 더욱 6.25 전쟁에 대하여 간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마거리트 히긴스가 지었고 이현표가 옮긴 『자유를 위한 희생』이라는 제목의 책이 그것이다. 이 책 저자 히긴스(1920-1966)는 전쟁 발발 이틀 후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녀는 격렬했던 한국 전쟁터를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종군기자 신분으로써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한반도 곳곳을 거침없이 누볐다. 그리곤 《War in Korea》를 썼다. 그녀는 이 글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는 미국인이었을 뿐인데 한국을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인지 휴머니즘과 민주주의에 대한 애정을 염두에 두고 전쟁 실상을 취재했다. 그리곤 극한 상황에서 표출되는 인간들의 음영(陰影)과 한 편 밝은 면을 섬세한 감성으로 놓치지 않고 자신의 펜 끝으로 그려냈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필자는 히긴스 그녀가 1950년대 여성으로서 사회의식이 참으로 남달랐었다는 생각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취재에 매우 충실했다. 인천 상륙 작전 땐 미군과 함께 배 안에 있었고 맥아더 장군을 인터뷰 하였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의 인터뷰도 강행했었다. 그녀는 퓰리처 상 수상 후 미국 전역을 돌며 전쟁의 처참함을 겪는 한국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간절히 호소하기도 했다. 이 책을 덮으며 히긴스야말로 영원한 우리의 친구라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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