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 중 하나였던 영국의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가 12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호크니 측 관계자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20~21세기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호크니가 자택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수영장 그림’으로 잘 알려진 그는 1937년 영국 북부의 공업도시 브래드퍼드에서 노동자 가정의 다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1959년 입학한 런던 왕립예술대학(RCA)에서 그는 일찌감치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여성 모델을 그리라는 과제를 거부하고 미국 보디빌딩 잡지에 실린 근육질 남성들을 그렸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동성애가 범죄로 취급받던 시절, 그는 '함께 부둥켜안은 우리 두 소년'(1961) 등 작품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김없이 담았다. 졸업에 필요한 논문도 "화가는 그림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며 내지 않았다. 학교는 결국 호크니에게 졸업장을 주기 위해 규정을 고쳤다.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강렬한 색채와 햇빛, 수영장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대표작인 A Bigger Splash와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는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회화뿐 아니라 사진 콜라주, 판화, 무대 디자인, 디지털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실험했다. 특히 아이패드와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며 고령에도 새로운 예술 언어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다.호크니는 2018년 '예술가의 초상(두 인물이 있는 수영장)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가 경매에서 9030만 달러에 낙찰되며 당시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은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 '데이비드 호크니'를 개최해 드로잉, 회화, 사진, 영상 등 130여 점을 선보였다. 당시 전시는 8개월간 37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국내 미술관 역대급 흥행 기록을 남겼다.
 
그는 평생 '거절을 잘 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1990년에는 기사 작위를 거절했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요청도 사양했다. 평생 줄담배를 피우며 영국 정부의 금연 정책을 "기괴한 사회공학"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두고서도 "대부분의 사람은 잘 보지 않는다. 그저 걸어 다니기 위해 발 앞의 땅을 훑을 뿐이다. 나는 평생을 보는 데 썼다"고 말할 정도로 까칠한 성격이었다.그런 그가 온전히 마음을 바친 건 그림뿐이었다. 2015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과거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을 산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