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5일에 숭혜전김씨화수계원 250명 중 70여명이 전세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140여 년 전의 창계일을 기념하고 문화유산을 심방(尋訪)하기 위하여, 김천시 대항면 황악산에 소재하는 직지사에 왔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이 대찰은 418년(눌지왕 2) 아도(阿道)화상이 창건한 이후 세구년심에 많은 변란으로 소실 혹은 퇴폐된 것을 645년(선덕여왕 14)에 자장율사가 중창하고 930년(경순왕 4)에 천묵(天默)이 중수하였으며, 936년(태조 19)에 능여스님이 태조의 도움을 받아 크게 중창하였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창 중수하였고, 현대에 들어서는 규모가 다시 크게 확장되었다. 특히 일명 불교연수회관으로 이용하는 만덕전은 동국대학교 재단이사장을 역임한 주지 녹원 스님에 의하여 1991년부터 1994년에 걸쳐 건립된 직지사 최대의 건물로서 넓이가 총 361.54평이라고 한다.    외부는 완전 목조건물이지만 내부 중량의 일부는 철근 콘크리트로 들보가 구성되어 있으며 기와는 동기와로 제작되어 장엄한 시각적 느낌을 주었다. 오늘날은 100동의 건물과 창림이 울창하고 사찰 전역이 깨끗하고 안전하게 다듬어져서 그야말로 청정 도장(道場)이었다. 이 직지사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설이 있고,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하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하여 직지사로 불렸다는 설과 고려 초기에 능여(能如)스님이 사찰을 중창할 때 절터를 측량하기 위해 직접 손가락으로 측량하여 지었기 때문에 직지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계량하는 도구가 없었던 지난 시대에 손가락의 마디로 측정했던 사례는 고문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신빙성 있는 사적이라 생각된다. 30년 전에 당시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장이셨던 녹원 스님을 뵙기 위해 왔을 때와는 너무나 많이 환경이 괄목할 정도로 바뀌어서 비록 큰 스님들은 열반하였지만 중생을 위한 불사의 업적이 이렇게 창연하니 다시 생세의 진면목을 뵙는 듯하다. 입구에 1994년 4월 초8일 직지사에서 수갈(竪碣)한 석비에 명각(銘刻)된 ‘直指寺韻(직지사운)’이라는 시문이 눈길을 당기기에 살펴보니,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출신으로 1960년 신춘문예에 등단하여 천여 편의 시문을 남겨 현대시조문학의 기반을 다진 정완영(鄭椀永) 시인의 시였고, 묵서는 서예를 발흥시켜 중시조로 평가받는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의 글씨였다. 저명한 시인과 명필 서예가의 필적이 빛나는 묵중한 시비는 무성(無聲)의 언어였으나, 밝은 햇살에 비친 시문은 소객(騷客)의 둔한 걸음을 멈추고 감동의 여운을 남기기에 여기 다시 ‘직지사운(直指寺韻)’을 기록하여 전해본다. 매양 오던 그 산이요 매양 보던 그 절인데도 철 따라 따로 보임은 한갓 마음의 탓이랄까 오늘은 외줄기 길을 落葉(낙엽)마저 묻었고나 뻐구기 너무 울어싸 절터가 무섭더니 꽃이며 잎이며 다 지고 산날이 적막해 좋아라 허전한 먹물 장삼(長衫)을 입고 숲을 거닐자 오가는 문객(門客)의 길에 속승(俗僧)이 무에 다르랴만 사문(沙門)은 대답이 없고 행자(行者)도 말 잃었는데 높은 산 외론 마루에 기거(起居)하는 흰 구름 인경은 울지 않아도 산악(山岳)만한 둘레이고 은혜는 뵙지 않아도 달 만큼은 둥그느니 문득 온 산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노메라 ‘외줄기 길을 낙엽마저 묻었고나’ 라는 문단에서 볼 때, 낙엽에 묻힌 가을 외줄기 산길이 선하게 보이는 듯하고, ‘높은 산 외론 마루에 기거하는 흰 구름’이라는 표현은 고산(高山) 백운(白雲)과 같이 비록 보이기는 하나, 실체 없음이 마침내 구원 정토에서 머무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서, 산새 한 마리가 되어 깃 떨어뜨리며 떠난다고 하였으니 직지사 천공의 흰 구름 바라보며 사물과 사상을 바르게 관조하는 생활을 바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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