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칠 때 바위에 부딪혀 부서져 가는 물방울이 스승에게 묻는다. “제가 어떻게 해야 바다가 될 수 있나요? 스승은 웃음을 터뜨린다. 왜 웃었을까? 그것은 물방울이 이미 바다이기 때문이다. 불교와 도가는 인간 존재 본래성을 “이미 완전한 것”으로 본다. 불교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본래 부처이며, 도가에서는 “자연”은 스스로 태어나고, 스스로 살다, 스스로 돌아가는 존재로 이해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본래”를 우리가 망각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업식(業識)—과거 경험과 사회 조건, 교육을 통해 습득한 고정관념들—이 우리를 덮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잊는다. 스승 앞에서 물방울은 진지하게 묻는다. “저는 아직 바다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질문 자체가 바로 무지에 대한 표현이며 동시에 깨달음으로 다가가는 문이다. 묻는 순간, 이미 진실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장자 ‘소요유’는 별다른 목적 없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논다는 뜻으로, 소풍 가듯 가볍게 구만리 창공에서 자유롭게 훨훨 나는 대붕처럼 굴레, 편견, 아집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이다. 바람결 따라 흘러가는 자유로운 존재, 자신이 세상과 분리되지 않았음을 아는 자가 가지는 유유자적함이다. 장자와 혜자가 대화를 나눈다. 장자,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으니 참으로 즐거워 보이는구나.” 혜자, “너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아느냐?” 장자, “너는 내가 물고기가 아님을 아는데, 어찌 내가 물고기 즐거움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느냐?” 혜자, “나는 네가 물고기가 아님을 알지, 그러나 네가 물고기 즐거움을 아는지는 알 수 없다.” 장자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 네가 어떻게 물고기 즐거움을 아느냐고 말했을 때, 너는 이미 내가 그것을 안다고 인정한 셈이다. 나는 다리 위에서 안 것이다.” 장자는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며 자유로이 노니는 모습을 보고 인간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물고기가 물속에서 자유로운 것은 물과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방울이 바닷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물방울일 뿐 바다가 아니야”라고 여기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서 “나는 공기 중에 있어야 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우스운 일이다. 『금강경』에서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어디에도 집착함 없이 마음을 내라-이라 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을 낼 때마다 무언가에 의지하고, 어디론가 향하고, 어떤 상태가 되기를 바란다. 바다가 되기를 바라는 물방울처럼. 그러나 스승은 물방울은 이미 바다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걸 인정하지 못할 뿐이다. 때문에 스승은 웃었다. 때로는 소리 지르고, 때로는 막대기를 휘두른다. ‘말’로 해석되고 이해하는 순간, 진리는 다시 분별 세계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도를 말하면 도가 아니다. 참된 가르침은 언어 너머, 무심한 웃음이나 침묵, 혹은 망치 같은 일갈에 담긴다. 공자가 말한 “성인이란 곧 자연이다”라는 말이나, 노자 “무위이화(無爲而化)” 또한 같은 맥락이다.    성인은 억지로 도달하는 존재가 아니라, 본래 그러한 것임을 잊지 않는 존재다. 그러니 우리가 바다가 되기 위해 할 일은, 바다가 아니라고 믿는 그 분별심, 그 업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자성을 되찾는다는 말은, 우리가 무엇이 되거나 바뀌는 것이 아니라, 본래 나로 돌아가는 일이다.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물방울이 스승에게 묻는다. “제가 어떻게 해야 바다가 될 수 있나요?” 스승은 웃는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그대는 이미 바다다. 다만 그대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무지를 넘어서기 위해 이 질문을 한 것, 이것이 바로 진리로 가는 문턱이니라.” 무지를 없애는 공부는 곧 분별을 버리는 공부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되, 어느 순간 산도 아니고 물도 아니며, 다시 산이요 물이 되는 경계를 아는 것은 견성(見性) 체험이다. 이어 오후(悟後) 공부는 바다답게 사는 일이다. 이미 바다인 자는 그 본래성에 걸맞게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 물방울이 바다가 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 다만, 바다인 채로 물방울이라 믿어온 긴 잠에서 깨어나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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