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신라 효공왕릉 뒤편 산자락에 자리한 한옥 복합문화공간 수오재(守吾齋, 대표 이재호)가 개관 30주년을 맞아 전시와 공연, 인문 담론이 어우러진 연중 문화예술제를 펼치고 있다. 
 
전국 각지의 수몰 위기에 놓였던 한옥 여섯 채를 되살려 탄생한 수오재는 지난 30년 동안 여행객과 문인, 예술가, 학자들이 드나드는 문화 사랑방으로 기능하며 경주를 대표하는 민간 문화공간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올해 수오재가 마련한 ‘2026 예술과 인생 : 서라벌의 빛’은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 전통 한옥이 현대 예술과 만나 살아 숨 쉬는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전시와 공연, 강연을 통해 경주를 비롯, 여러 지역 문화교류의 장을 형성하며 지역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오늘의 수오재를 일군 이재호 대표는 전국 유명 고택들을 이건해 현재의 공간을 조성했다. ‘나를 지키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수오재는 칠곡·마산·영광·김제 만경대 등 전국 각지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100~200년 된 고택 17채를 해체·이전해 복원한 한옥 복합공간이다. 황부자집으로 알려진 마산 고택을 비롯해 211년 된 김제 만경 한옥 고택, 150년 된 칠곡 고택 등의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현재의 수오재를 구성하고 있다.
지난 세월 동안 수오재는 문화예술인들의 쉼터이자 창작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으며 올해 30주년에는 한옥의 안팎을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릴레이 초대전을 통해 전통 공간의 새로운 활용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한옥 보존을 통해 경주 문화자산을 지켜온 집념과 실천의 역사에 다름없다.  
올해 릴레이 초대전은 2월 부산대학교 김성계 교수를 시작으로 3월 부산교육대학교 정원일 교수, 4월 경주가 고향인 울산대 김연민 교수, 5월 울산대학교 전호태 명예교수 전시로 이어졌다. 이어 이달에는 한지조형예술가 이정신 박사가 초대작가로 참여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현재 수오재 한옥갤러리에서는 건립 30주년 기념 다섯 번째 릴레이 초대전인 이정신 개인전 'REJUVENATION | 피어나다'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오는 7월 10일까지 계속된다.
이정신 작가의 이번 전시 주제인 ‘Rejuvenation’은 잃어버린 생명력과 활력을 회복해 새롭게 태어나는 내면의 재생을 의미한다. 작가는 우리 정서와 가장 가까운 재료인 한지를 중심으로 천연 옻칠과 밀랍을 접목한 작품들을 통해 현대인의 상처와 치유, 회복의 과정을 시각화했다.전시장 첫 공간에는 ‘치유’를 주제로 한 'Lingering Mantra_기원' 시리즈와 탈색 작업들이 선보인다. 검은 구김한지를 반복적으로 바래내는 수행적 과정을 통해 감춰진 감정의 층위를 드러내고, 비움과 성찰의 시간을 표현한다.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재생’을 주제로 한 'Introspection_바라보다' 시리즈가 관람객을 맞는다. 천연 옻칠의 깊은 색감과 은은한 광택이 더해진 작품들은 오랜 세월을 견디는 한지의 생명력과 인간 내면의 회복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수오재 30주년을 위해 제작된 설치작품 'Lingering Mantra_기원'은 이번 전시의 백미로 꼽힌다. 한지에 담아낸 지장경과 한지실로 짠 30여 개의 한지 풍경(風磬)이 고택을 스치는 바람과 만나 은은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관람객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한지에 적어 작품에 직접 매달 수 있어, 예술 감상을 넘어 치유의 과정에 참여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지난 14일 열린 개막식에서는 박옥순 패션디자이너가 기획한 패션쇼 ‘나 여기, 경쾌한 데’가 펼쳐졌으며, 이정신 작가가 직접 진행한 작품 해설과 대화의 시간도 마련돼 호응을 얻었다.이정신 작가는 “'피어나다'는 잃어버렸던 본질적 생명력을 다시 찾아 새롭게 태어나는 내면의 회복을 뜻한다”며 “한지와 옻칠, 바람을 노래하는 한지 풍경 소리가 머무는 이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지친 일상을 위로받고 새로운 창조적 에너지를 얻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수석 졸업한 이정신 작가는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유타대학교 섬유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특히 박사학위 논문 '옻칠과 밀랍을 활용한 한지표현 연구'를 통해 전통 재료의 조형 가능성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연구자로 평가받는다.부천대학교에서 33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과 전통문화 연구에 헌신한 그는 경기도지사 표창, 한국전통문화 활성화 공로상, 옥조근정훈장 등을 수훈했다. 또 한국과 미국, 일본을 오가며 10회의 개인전과 139회의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한국 한지조형예술의 현대적 확장에 힘써왔다.
수오재의 30주년 문화예술제는 앞으로도 이어진다. 7월에는 한국옻칠문화예술협회의 정기 발표전이 예정돼 있으며 8월 임형환 사진전, 9월 문정희 작가전, 10월 김언영·지원화실 초대전, 11월 김현수 작가전, 12월 이민경 작가전이 차례로 열린다. 이어 2027년 1월에는 송대표와 ㈜달장, 2월에는 김수희 작가 전시가 예정돼 있다.이재호 대표는 "수오재 개관 30년은 이제 새로운 문화적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오래된 집이 품은 기억과 예술가들의 창조적 상상력이 만나 경주 문화지형도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풍경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