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을 담당하는 선출직 공직자들, 즉 국회의원과 시·도의원, 구·군의원들에게는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존경하는 ○○의원님”이라는 표현이다. 의회 회의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 말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과연 이 수식어가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고, 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정치인은 얼마나 될까.“존경하는”이라는 표현의 유래는 의회정치의 역사가 깊은 영국 의회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영국 의회는 여야 의원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구조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무릎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토론이 이루어졌고, 손만 뻗으면 상대방의 멱살을 잡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그 결과 의회에서는 격렬한 언쟁이 몸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상대 의원을 향한 “존경하는 의원(Honourable Member)”이라는 호칭이었다. 상대를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감정을 절제하고, 논쟁을 사실과 논리에 기반한 토론으로 이끌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관행이 정착되면서 의회 내 물리적 충돌도 크게 줄어들었다고 전해진다.말에는 사람의 행동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상대방을 향해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말은 상대를 향한 존중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보내는 절제의 약속이 된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다짐, 상대의 말을 함부로 끊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끝까지 경청하겠다는 의회의 품격을 담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이러한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기도 한다. 어떤 정치인은 상대를 향해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말한 뒤, 돌아서서는 “내가 존경한다고 했더니 정말 존경하는 줄 아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말장난일 뿐만 아니라 의회 민주주의의 정신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실제로 존경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 표현 속에 담긴 절제와 배려, 그리고 민주적 토론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예의와 배려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과거 제국주의 시대, 한 아프리카 부족의 추장이 유럽의 왕자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다. 식탁에는 물이 담긴 대접이 놓여 있었는데, 추장은 그것을 마시는 물로 생각하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나 그 물은 손을 씻기 위한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놀라며 수군거렸다. “역시 미개하군.”그 순간 왕자도 자신의 대접을 들어 같은 물을 마셨다. 추장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진정한 예의란 무엇일까. 형식만을 강조하는 꽉 막힌 규범일까, 아니면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따뜻한 마음일까. 왕자의 행동은 예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예의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며, 서로를 편안하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오늘날 일부 정치인들은 선출된 권력을 마치 특권처럼 여기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잊고 살아간다.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형식적인 말장난 정도로 치부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본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성경 잠언에는 “사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교만과 거만, 오만은 결국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겸손과 배려는 사람을 존귀하게 만든다.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존중하고 경청하는 의회, 국민을 배려하는 정치,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존경하는 의원님”이라는 한마디가 단순한 관용구를 넘어 민주주의의 품격과 정치인의 책임을 일깨우는 말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