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 서면 안보리 산25-1번지에 가면 조선조 영의정 김육(金堉)의 아들이며, 조선 18대 임금 현종의 장인인 김우명(1619∼1675)의 묘역이 있다.
그는 인조 20년(1642) 24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여 강릉 참봉, 세마, 영돈녕부사, 오위도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1659년 현종이 즉위하자 그의 딸이 현종의 세자빈이었기 때문에 국구로서 청풍부원군에 봉해졌고, 정치적으로는 송시열, 송준길과 함께 서인이었으나 사안에 따라 남인에 동조한 경우도 있었다.
뒤에 남인인 허목, 윤휴 등과 알력이 심해지자 벼슬을 그만두고 칩거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조정에서는 김우명이 사망하자 현종비 명성왕후의 부친이고 외척 가문의 중심인물이기도 하여 부원군(府院君)에 대한 예우로 강원도 춘천에 있는 묘지를 하사하였다. 
 
과거 유명인들의 묘소는 대부분 한가지씩의 전설이 있는데 이 묘소 역시 장례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1675년 김우명이 세상을 뜨자 조정에서는 부원군에 대한 예우로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 묘지를 마련해 주었다.
후손들은 그곳에 장사지내기 위하여 한양에서 뱃길로 운구하던 중, 현재의 묘소 앞에 이르러 배가 움직이지 않고 돌풍에 명정(銘旌)마저 산으로 날아가 소나무에 걸렸다.
그래서 지사가 명정을 찾으려고 산으로 올라가 주변을 살펴보니 명정이 떨어진 곳이 바로 천하의 명당자리였다. 그래서 후손들은 조정에서 하사한 땅을 취소하고 이곳에 묘를 썼다고 전한다.
이 묘역은 현종의 장인인 김우명과 덕은부부인(德恩府夫人) 송씨의 합장묘로, 진입하는 입구에 신도비가 있고 숙종의 어필로 쓰인 묘비가 있으며, 묘역 뒤쪽으로는 일반인들의 묘에서는 보기 드문 담장이 둘러져 있다. 이 묘역은 1976년 6월 17일에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청풍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한편 1982년 중요민속자료 제60호로 지정된 청풍부원군 상여가 춘천국립박물관에 남아 있는데 이는 1675년(숙종 2) 김우명의 장례 때에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의 산세는 한북정맥인 포천시 이동면의 백운산(903m)과 국망봉(1,167m) 사이에 있는 도마봉에서 동남쪽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내려와 경기도 가평군 북면의 화악산(1,460m)을 거쳐 계관산(735.7m)을 일으킨다.
김우명의 묘소는 계관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이 묘소 뒤에까지 내려와 250m의 봉우리를 일으켜 현무봉이 되었다. 현무봉은 둥그스름한 금형체의 부봉이고 여기서 좌우로 뻗어 내린 청룡과 백호 자락이 묘소를 잘 감싸주고 있어 장풍국을 이룬다.
혈장 뒤에는 입수(入首)가 분명하기에 정혈처에 자리 잡았고, 묘소 뒤편으로는 곡장을 둘러 바람의 피해가 전혀 없다. 이곳의 수세는 좌우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혈장 앞쪽을 환포 해주며 흘러나가는 북한강에 합수하여 팔당댐으로 들어간다.
묘소의 좌향은 임좌병향의 남향으로 묘소에서 보아 물이 마지막으로 빠져나가는 수구가 우측 정미(丁未)파라 내룡맥은 관대룡으로 생기가 충만한 땅이고 88향법으로도 변국하여 자왕향을 얻었으니 남총여수(男聰女秀)하고 조빈석부(朝貧夕富) 하는 속발의 길 향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