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엔 학창 시절 문학소년·소녀 아니었던 사람이 몇 되랴. 그 시절엔 순수와 낭만을 구가(謳歌)하기 일쑤였다면 지나칠까? 반면 우리 세대와 달리 현대 젊은이들은 마음 밭이 바짝 메말랐다. 원인은 너무 생존경쟁이 치열해서 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잖은가.
필자역시 결혼 후에는 요즘 젊은이들과 형편이 비슷했다. 날이 갈수록 삶의 무게에 짓눌렸었다. 그래서 지난날 가슴에 품었던 문학에 대한 열망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했다. 중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글을 쓰기 위하여 펜 끝에 달빛을 묻힐 수 있었다.
최초로 문학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윤극영 동시인의 《반달》이라는 동요를 부를 때마다 애잔한 곡과 동심을 잘 드러낸 가사에 한껏 매료되곤 했었다. 또한 훗날 자라면 필자도 윤극영 시인처럼 어린이 마음을 흠뻑 적시는 그런 동요를 쓰고 싶었다. 이 꿈 때문인지 중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시(詩)에 대한 문향을 가슴으로 직접 체험 했다. 당시 동네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시집에 의해서이다. 신석정 및 윤동주, 김영랑, 이 상, 김동명, 정지용, 유치환, 조지훈 시인 등의 시가 집적(集積)된 시집이었다. 이것을 구입 한 후 밤새워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시집 속에 수록된 편 편의 작품들을 대할 때 마다 그 벅찬 감동은 지금도 돌이킬수록 가슴이 뛰곤 한다. 특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중략)라는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는 그 시어가 안겨주는 민족적 정서, 전통에의 향수가 시 행간마다 내재돼 깊은 감흥을 얻었다. 이 시는 불교적 선미(禪味)라는 조지훈 시인 초기의 시 세계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매우 뛰어난 수작(秀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를 입 속으로 암송 할수록 시어마다 배인 인간이 지닌 번뇌가 종교적으로 어떻게 승화 되는가에 주목케 하는 힘도 지녔다.
그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필자는 매우 조숙했나 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고뇌에 한창 휩싸이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시가 더욱 마음 갈피갈피마다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이 뿐만 아니었다. 훗날 ‘나도 일상의 정서를 서정적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주옥같은 시를 꼭 쓰리라’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이후 시 습작에 몰입해서였는지 공부는 뒷전이었다. 틈만 나면 백지가 까맣도록 연필로 시 쓰기에 바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문학의 탑을 쌓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 했다. 시 창작의 지름길은 너무나 멀고도 멀어서이다. 시 작품의 기본이라 할 완벽한 문장은 현실에 따른 메타포 구성에 있잖은가. 이런 창작 이론에 무지했던 필자로선 시에 대한 문형(文型)의 눈금을 제대로 채우는 일에 많은 고민과 어려움을 겪었다.
심취하면 할수록 설렘과 두려움이 반복되곤 했었다. 이럴 때마다 문학에 대한 경외심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럼에도 문학은 필자에게 마치 하늘이나 다름없었다. 문학에 대한 번민이 거듭할수록 이를 앙다물고 백지의 여백(餘白)을 시에 대한 습작으로 메웠다. 하지만 여고 2학년에 이르러서는 시 창작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다시 마음을 바꾸어 산문 쓰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여고 시절에 이미 수필문학을 필자의 하늘로 만들기 위한 기초 공사(?)를 한 셈이다. 그러나 수필문학 역시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었다. 무형식이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형식이 있잖은가. 무엇보다 수필문학의 여러 작법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본인이 직접 체험한 일을 서사로 탄탄한 문장으로 구사, 글의 주제를 은연중에 표현해야 한다. 작자가 글 속에서 현학적 및 교훈, 주제를 노골적으로 표출 한다면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기 십상 아니던가.
그러나 요즘은 문단에 입문하는 문이 좁지 않아서인가 보다. 각종 문예지에 발표되는 수필 작품의 경우, 그것에 내재된 본연의 문향을 좀체 맡을 수 없다. 즉 주위에 글들은 넘쳐나고 있지만, 진정한 문·사·철을 섭렵한 글이 별로 없다면 너무 쓴소리 이려나? 문·사·철이란 무엇인가?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역사와 문학 및 철학을 통칭하여 문·사·철(文史哲) 이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문단에 등단한지 어언 30 여 년이 넘는 세월이다. ‘반생이 훨씬 넘게 긴 시간 동안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일환으로써 과연 문·사·철(文史哲) 통찰에 충실했던가?’ 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손이 가슴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