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3보란 황룡사 장육존상과 9층탑 그리고 천사옥대를 말한다. 유사에는 고려 태조가 신라 침공에 앞서 신라에 세가지 보물이 있어 침범할 수 없다고 하는데 무엇을 말하는가 하고 물으니 황룡사 장륙존상과 9층탑 그리고 진평왕의 천사옥대라고 해 왕은 침공계획을 중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3보에 얽힌 이야기는 신라의 입장이 아닌 고려의 입장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신라는 3보라는 개념이 없었고 후대에 들어 세가지 보물로 특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기록상 3보로 특정지어진 것은 경명왕때다. 사기에는 경명왕 5년에 이찬 김률이 왕건으로 부터 신라에는 3가지 보물이 있다고 하니 탑과 존상은 남아있어 알겠는데 옥대는 어디 있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었으나 답을 못했다고 나온다. 이에 왕도 옥대는 어떤 보물이냐 고 묻자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황룡사의 구순이 넘은 고승이 자신도 전해 듣기로는 진평왕이 사용한 것으로 남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해 확인하니 금옥으로 장식되어 있고 길이가 길어 보통사람은 착용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보물이라 하지만 왕도 신하들도 모르는 옥대였던 것이다.
왕건으로서는 고려건국에 따른 민심수습과 체제정비를 위해 신라의 3보가 갖는 상징성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유사에는 937년에 경순왕이 태조에게 옥대를 바쳤는데 길이가 10뼘에다 새겨붙인 장식이 62개로 태조는 이것을 받아 궁중의 창고에 보관했다고 한다. 이는 바로 신라의 계승이요 왕통의 당위성으로 연결되어 진다. 신라때는 황룡사 창건설화와 함께 장륙존상과 천사옥대 역시 왕즉불사상의 고취와 왕권강화를 위한 왕위의 신성함과 권위를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단순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왕건으로서는 삼국통일을 한 신라를 계승하여 후삼국을 통일하려는 정치적 염원과 고려건국의 당위성 확보를 위해 황룡사 9층탑을 본받아 서경에 9층 목탑을 건립한 것을 보면 신라 3보를 부각시킬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다.
사실 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는 함축하고 있는 상징성을 간파하지 않고는 허황된 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황룡사 장육존상은 1장6척으로 4,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불상이다. 인도 아소카왕이 3번이나 불상조성에 실패하고 인연이 닿는 곳에서 장육의 존귀한 모습을 이루라는 축원과 함께 보낸 황철 5만7천근과 황금 3만푼으로 신라는 한번만에 주조에 성공한 것이다.
유사에는 이로써 아소카왕의 근심이 사라지게 되었다며 8백여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황룡사에 모셔진 것은 부처님의 위엄과 인연으로 된 것이라 했다. 이는 진흥왕의 왕즉불사상을 의도한 것이며 신라가 인도에 버금가는 불국토라는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황룡사 9층탑 역시 선덕여왕의 권위를 높이고 신라를 둘러싼 9나라의 위협을 물리칠 수 있다는 문수보살의 계시를 실천함으로써 문화적 자존감을 표출한 것이다. 당시의 건축술로 3년만에 목조로 높이 80미터에 달하는 9층탑을 조성했다는 사실은 사전준비 작업과 시간이 누락된 기록으로 봐야한다.
또 진평왕의 천사옥대는 즉위 원년인 579년 하늘로부터 옥대를 받아 각종 제례나 종묘제사 등에 옥대를 사용했다고 해 왕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진평왕은 이름에서 부터 석가를 모방해 백정이라 했고 부인도 마야부인으로 하는 등 철저하게 석가를 모방하고 있다.
비록 13세에 즉위했지만 재위 53년간 체제를 정비하는 등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왕이다. 또 키가 11자로 발을 내딛으면 내재석궁의 섬돌에 금이 갈 정도라고 했으니 체격의 당당함과 함께 하늘로 부터 보물을 받을 인물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신라에서는 3보라는 인식이 없었고 고려의 건국시기에 부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탑과 불상은 고종 25년 1238년 몽고병란으로 불에 타 없어졌고 신라가 고려에 납토하면서 왕건에게 선물로 준 천사옥대에 대한 행방은 알 길이 없다. 사기에서 김부식은 신라3보에 대해 중국의 3기처럼 인위적인 사치에서 나온 말이며 태조가 신라인의 말을 듣고 물어본 것일 뿐 숭상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한편 맹자는 진심편에서 제후의 보배는 토지 인민 정사라고 했다. 오늘날 국가의 3보는 국가를 구성하는 3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이라 할 수 있으며 국민 모두가 가치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가꾸어 가야 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