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거대한 대들보다. 국가 전체 수출의 20% 안팎을 차지하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마다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황무지에서 맨손으로 일군 이 기술력은 오늘날 전 세계 첨단 기업들이 의존하는 '기술 종주국'의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단순한 상품을 넘어 강대국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독보적인 국가 안보 자산이자 외교적 방패막이다. 이러한 막강한 경제적 파급효과와 고품질 일자리 창출 능력 때문에 전국 지자체는 사활을 걸고 있다. 영호남을 가리지 않는 유치 경쟁의 밑바탕에는 반도체 라인 하나가 지역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우려스럽다. 집권여당이 경제적 투자 유치를 빌미로 내부 주도권 싸움을 벌이거나, 선거용 선심성 고안으로 표심을 자극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가 백년대계가 장기 집권을 위한 정치 공학적 전리품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 산업은 정당의 당리당략이나 정치적 지역 차별성에 의해 쪼개지고 왜곡될 대상이 아니다. 철저하게 국가 전체의 파급 영향과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기준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 해답은 전국을 5대 초광역 메가시티와 3대 특별자치도로 재편하는 ‘5극 3특’ 기반의 산업 재배치에 있다. 균형 잡힌 국토 공간 위에 반도체 팹과 후공정, 소재·부품·장비 생태계를 효율적으로 분산 수용하는 것이 진정한 일류 국가의 길이다. 산업 재배치의 대원칙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지표다. 반도체는 전력망과 용수의 안정적 공급, 물류 인프라, 우수 인력 확보가 생명이다. 정부는 정치적 안배나 표 계산을 지우고, 철저하게 과학 데이터에 기반해 입지를 검증해야 한다. 지자체 간의 소모적인 갈등을 중재하고 공정한 상생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정부의 본분이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신뢰의 정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내부 권력 싸움으로 국부의 주춧돌을 흔드는 구습은 당장 멈춰야 한다. 5극 3특의 균형발전 체계 위에서 산업 지도를 냉철하게 재설계할 때, 비로소 기술 안보와 대한민국 경제 영토가 영속될 수 있다. 정부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책 결단을 강력히 촉구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