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산1-8번지에 가면 고려말 3은(三隱)의 한사람인 목은 이색(1328-1396) 선생의 묘가 있다. 그는 고려 충신으로 조선 초 태조의 요청에도 출사를 거절하고 절개를 지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 3은의 한사람으로 불리었다.   목은 이색 선생은 가정 이곡 선생의 아들로 외가인 경북 영덕군 영해읍 괴시리 호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학문에 뛰어나 일광사(日光寺) 등에서 공부하였고, 공민왕 2년(1353)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그는 고려 공민왕의 개혁부터 조선의 건국까지 끝까지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치며 최고의 재상 자리에 올랐다. 1389년(공민왕 1)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이 강화로 쫓겨나자 창왕(昌王)을 옹립하여 즉위하게 하였으나 이성계 일파가 세력을 잡자 장단(長湍), 함창, 청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는 뛰어난 자질로 한국과 중국에서 과거에 급제하였고, 고려말 성리학의 도입과 인재 양성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정몽주(鄭夢周, 1337~1392), 정도전(鄭道傳, 1342~1398), 권근(權近, 1352~1409)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조선 건국 후에는 조정에 머물라는 이성계의 권유를 끝내 거절하고 낙향하던 중 여주 신륵사에 머물다 생을 마감하였다.   사후 그의 셋째 아들인 이종선(李種善, 1368~1438)은 아버지의 시신을 한산이씨 문중 묘역이 있는 선산으로 모셔 와 장사 지냈다. 좌향은 남향이며 이색의 묘 바로 아래에는 3남 이종선(李種善)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그가 묻힌 곳은 당시 풍수의 대가였던 무학대사(1327~1405)가 점지한 자리로 기린이 아래로 내려와 풀을 뜯어 먹는 형국인 기린하전(麒麟下田) 형국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묘역의 남동쪽에는 이색을 기리기 위해 현종 7년(1666)에 세운 신도비가 있고, 이색을 비롯한 한산이씨의 선현들을 모신 문헌서원이 있다. 이 묘소는 1993년 11월 12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산세는 금북정맥인 청양군 백월산(575.6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이 부여군의 조공산(399.3m)과 보령시 옥녀봉(367.9m), 서천군 노고산(228.6m)을 거쳐 마산면에서 기린봉(145.5m)을 일으킨다. 본 묘소는 금형체의 기린봉에서 우선으로 내려와 과협을 하였고 좀 더 뻗어 내려와 유혈의 혈장에 이색 선생님과 그의 아들 이종선이 상하로 모셔져 있다. 이곳의 청룡·백호는 높이나 거리 면에서 완전하지는 못하나 2~3중으로 겹겹이 감싸주고 있어 나름 장풍국을 이루어준다.   여기서 본 묘소의 우측 어깨 부분이 좀 허(虛)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아름드리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어 바람의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세는 우선룡에 좌선수로 합법하고 용호의 끝자락이 잘 관쇄되어 안쪽의 생기를 잘 갈무리해주고 있다. 이곳은 조선 초의 풍수 대가 무학대사가 점지한 기린하전형의 명당 터로 이름나 있고 풍수에서 형국론이란 산천의 생긴 모양을 보고 사람이나 사물 또는 동물이나 식물, 문자 등 어떤 형상에 비유하여 혈을 찾는 이론이다. 이것은 우주 만물은 저마다 모양이 있고 그 모양에 따라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기(氣)가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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