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결승에서 스페인에 패한 뒤에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응원가를 불렀다. 그들에게 주인공은 우승컵이 아니라 20년 동안 대표팀을 위해 헌신한 리오넬 메시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이었다. 승리만 소비하고 패배한 선수를 비난하는 대신, 헌신의 시간을 기억하고 박수로 화답하는 모습에서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를 본다.스포츠는 기록과 순위를 넘어 세대와 계층, 지역과 이념을 하나로 묶는 공공의 자산이다. 아르헨티나 시민들은 준우승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았다. 대표팀이 국민에게 안겨준 기쁨과 자긍심을 선수들에게 돌려주며 패배마저 국민적 단합의 장면으로 만들었다.우리 축구가 부끄럽게 돌아봐야 할 대상은 선수보다 대한축구협회다. 감독 선임 때마다 불투명한 절차와 폐쇄적 의사결정이 논란이 되고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문제가 불거지면 해명으로 시간을 벌고, 여론이 잦아들면 기존 체제로 돌아가는 행태를 더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대표팀은 협회 집행부나 특정 인물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면 모든 결정은 국민 앞에 설명되고 검증받아야 한다.이제 필요한 것은 부분적인 보완이 아니라 조직을 다시 세우는 수준의 개혁이다. 감독 선임 기준과 평가 결과, 주요 회의록을 공개하고 기술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해야 한다. 회장과 집행부에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견제 장치를 마련하고, 책임 있는 인적 쇄신도 뒤따라야 한다. 외부 전문가와 선수·지도자·팬이 참여하는 감시체계를 만들고, 예산 집행과 인사 과정을 상시 공개해야 한다. 유소년과 여자축구, 생활축구, 지도자 육성에 대한 장기 계획도 성적과 무관하게 지속돼야 한다.팬들도 선수와 행정을 구분해 평가해야 한다. 패배한 선수에게는 격려를 보내되, 무능하고 불공정한 행정에는 냉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선수에게만 애국심과 희생을 요구하면서 협회는 책임을 피하는 구조를 방치해서는 한국 축구의 미래가 없다.진정한 스포츠 강국은 우승 횟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선수는 존중받고 행정은 감시받으며, 잘못한 조직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아르헨티나의 밤이 보여준 것은 패배의 품격이었다. 이제 한국 축구가 보여줘야 할 것은 축구협회의 뼈를 깎는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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