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이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소중한 신체 일부를 잃고 있잖은가. 며칠 전 치아 2개를 발치한 후 임플란트를 식립 했다. 어찌 이 일 뿐이랴. 십 수 년 전엔 뱃속의 담낭을 제거했고 간의 일부도 절제했다. 담낭에 양성 혹이 생겨서 담 관을 막고 있으며 그 것이 간도 눌러서 일부 상했다는 의사 진단에 의한 수술이었다. 막상 담낭 제거술을 하고나니 소화도 예전 같지 않고 기름진 음식도 맘껏 먹을 수 없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성격의 변화가 우려됐다. 쓸개가 없으면 나약하고 줏대가 없다고 해서이다. 흔히 주체성이 없거나 지나치게 비굴 및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일러서, “쓸개 빠진 놈” 이라고 비유하기도 하잖은가.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 날과 달리 그야말로 담(膽)이 약해진 느낌이다. 불의에 대한 입바른 소리를 할 때는 주위의 눈부터 의식하곤 한다. 즉 내 몸부터 보신(補身)하기 급급해 하는 듯하여 위에 언급한 말이 맞는 성 싶다. 지난 젊은 시절만 하여도 이렇 지는 않았다. 비록 타인의 일일지라도 주위로부터 불이익과 옳지 못한 일을 당하면 마치 내일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곤 하였다. 사실 그 당시 만 하여도 한국 사회에선 여자는 오로지 조신하고 무엇을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척 하는 것을 최상의 미덕으로 여겼잖은가. 그런 시대에 오지랖 넓게 남의 일까지 끼어들어서 바른 말을 하였으니, 어찌 보면 무모한 언행이었다. 이런 성향은 천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근교에 살던 필자는 학교를 가기 위하여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이 시절만 하여도 버스에 차장이 있었다. 주로 여성으로서 이들의 역할은 버스표를 받고 승객이 타고 내릴 때 버스 출입문을 열고 닫는 일을 도맡았다. 항상 필자가 타는 그 시내버스는 날마다 아침이면 통학하는 수많은 학생들과 직장인들로 콩나물시루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차장은 버스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로 인하여 곤욕을 치렀다. 심지어 열린 버스 문에 매달려서 닫히지 않는 버스 문을 가까스로 힘주어 닫곤 일본어인, “오라이!”를 연발 외쳤었다. 필자 역시 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는 버스를 타면 그들에게 밀려서 앞문에서 탔지만 항상 몸은 가장 뒤쪽에 서 있곤 했었다. 이 때 책가방은 손에서 벗어나서 버스 바닥이나 아님 저만치 사람들 어깨 위에 얹혀있기 예사였다. 어느 가을날 그날도 버스 안에서 공중 곡예 하는 책가방을 찾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 틈을 헤집고 앞으로 나갈 때이다. 그 때 복잡한 버스 속에서 바로 필자 옆에 서있던 청년이 어느 여성의 핸드백을 면도칼로 싹 그었다. 그리곤 그 안의 지갑을 재빠르게 빼내어 상의 주머니에 넣는 것을 목격했다. 
 
이 광경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큰 목소리로, “ 운전기사 아저씨! 지금 버스 안에서 소매치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라고 말하자 갑자기 차 안이 웅성 거렸다. 그 말을 들은 운전기사 아저씨는 곧 가까운 파출소로 차를 몰고 갔다. 그 덕분에 그 소매치기를 검거할 수 있었다. 사실 그런 일을 목격하고 아는 체 하면 그 소매치기 범인이 손가락 사이에 끼워둔 날카로운 면도칼로 몸에 자상을 입힌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서든 그 당시 잦았던 소매치기 범죄 현장을 목전에 두고도 아예 모른 척 외면하기 일쑤였다. 지금도 그 때 그 소매치기 범이 필자를 노려보던 험악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게 아니어도 요즘은 장소를 불문하고 온갖 범죄가 발생 한다. 거리를 지나치다 보면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종종 대한다. 미궁에 빠진 사건에는 사소한 실마리도 해결책이 될 수가 있다. 피해자가 얼마나 절박하면 사건 목격자까지 찾는다고 할까. 제보 한마디가 사건의 진위를 밝히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건 당사자의 인생이 뒤바뀔 수도 있다. 또한 진범을 찾아 죗값을 치르게 할 수도 있으므로 우리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필자 또한 이미 쓸개를 잃어서 때론 불의 앞에 위축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젊은 날처럼 소신이 뚜렷한 처세와 옳지 않은 일엔 몸 사리지 않는 삶을 지향할까 한다. 범죄도 날로 지능화 되는 현대에, 줏대 있고 용기와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 사회에 많을수록 우린 범죄의 온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