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친서를 갖고 미국 특사로 파견돼 을사늑약의 부당성 역설, '헤이그 밀사' 3인과 별개인 '제4의 밀사'로 일제 침략 폭로, 3·1운동 후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일제의 잔학성 고발,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알리고 맞춤법 정비에 기여….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 병합이 이뤄지기 전 이처럼 놀라운 헌신을 보여준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 최초로 건국훈장(독립장)을 받은 호머 베잘렐 헐버트(1863~1949) 박사이다.미국의 감리교 선교사로 1886년 한국에 건너온 헐버트는 교육, 언론, 역사 연구, 선교 활동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으며, 한글로 쓴 역사·문화 교재인 '사민필지'(士民必知)를 펴내 한글 보급에도 기여했다. 일제 강점기에 약탈된 국보 '경천사지 10층석탑'을 되찾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광복 이후인 1949년 정부의 초청으로 86세 고령이 되어 한국을 다시 찾았다가 병을 얻어 서울에서 타계했다. 헐버트 박사의 공적은 연구가 이뤄질수록 점점 쌓여가고 있지만,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심심치 않게 독립운동가의 공적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최근 독립운동 유공자의 공적 재평가와 포상 심사기준 개선에 나섰다. 축적된 연구 성과와 새롭게 발굴된 사료를 반영해 공적에 걸맞은 훈격을 재정립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평가 기준이다. 허위 기록 판별이나 새로운 공적 발굴은 물론 친일 행적이 혼재된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합리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불필요한 역사 논쟁이나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자랑스러운 역사이든, 부끄러운 역사이든 잊지 말아야 한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사살 의거 이후 헐버트 박사를 배후로 의심한 일제 사법기관의 조사과정에서 "헐버트는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대로 설정하기 위해서도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 역사를 추동해온 인물들을 기억해야 한다. 정치적 진영 논리를 배제하고 사료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공정한 재평가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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