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운동으로 이즈음 체중을 5킬로그램 감량했다. 하지만 코로나 19 창궐 전 몸무게를 회복하려면 아직도 4kg은 더 체중을 줄여야 한다. 처녀 시절에 날씬하지 않은 사람 몇 되랴. 필자도 20대엔 체중이 42킬로그램이었다. 젊은 시절과 달리 요즘 마치 뻥 튀기처럼 체중이 불어난 필자 모습을 본다면 어느 누가 지난날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변명일지 모르나 결혼 후 아이 낳고 당시 먹고 살기 바빠서 내 몸 관리엔 소홀했다. 그러다가 수 년 전엔 운동을 꾸준히 실행하여 9kg이나 체중을 감량했다.   그러나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휩쓸자 행동반경이 줄어들어서인지 요요 현상이 일어났다. 이렇듯 장황하게 글 서두부터 다이어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얼마 전 지인의 말 한마디 때문이다. 그녀는 현재 친정 부모님께서 노환으로 두 분 다 요양 병원에 입원 중이다. 특히 그녀 친정 노모께선 치매와 지병이 악화돼 코에 호스를 꽂고 연명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필자 친정 어머니 역시 불과 작년 새해 초까지만 하여도 요양 병원과 집을 수없이 드나들 다가 이젠 고인(故人) 이 되었다. 이런 친정노모를 수 십 년 간 봉양 해온 터였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헤아릴 수 있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그녀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부모님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대뜸, “ 노년일수록 다이어트에 신경 써야 해요. 친정어머니께서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계시니 살이 너무 쪄서 요양 보호사들이 간병에 무척 애를 먹고 있어요.” 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지난 몇 해 동안 요양 병원에 입원 이후 나날이 피골이 상접했던 친정어머니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어머니의 체구는 너무나 바짝 말라서 꼭 북어와 같아서 뵙기 매우 안쓰러웠다. 반면 어느 간병인은, “ 그래도 할머니는 몸이 가벼워서 병 수발 하기가 매우 수월해요. 살찐 노인들은 대, 소변 받아 낼 때 몸 다루기가 참으로 힘들 때가 많답니다.” 라고 하던 말이 문득 생각나기도 했다. 이 말을 돌이켜보노라니 비만이 외모와 건강에만 악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었다. 안 그래도 늙어서 병을 앓으면 자식은 물론 배우자에게 많은 부담을 안겨준다. 또한 병석에 누워서 살까지 찐다면 타인에게도 큰 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나이 드는 게 서러웠다. 이로보아 지금부터라도 체중 관리에 부쩍 신경을 써야할까 보다. 노후에 무병장수하며 천수(天壽)를 누린다면 이 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어느 누구도 장담 할 순 없다. 죽음 역시 때론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곁을 찾아오곤 한다. 무엇보다 우린 늙으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관문 중 하나인 온갖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부모로부터 주어진 인체 시계 또한 거슬릴 수 없다.   노쇠하면 빼어난 외모, 높은 사회적 지위, 많은 부(富)와 엄청난 명예도 부질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늘그막까지 매사에 욕망을 자제 못하는 이들을 보면 왠지 측은지심(惻隱之心)마저 느낀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그동안 손아귀에 잔뜩 움켜쥐었던 모든 것들을 손바닥을 펼쳐서 하나, 둘 씩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한 연령에 이른 듯하다. 이는 병마에 목숨 줄을 잡히면 세상사가 다 소용 없기 때문이어 서이다. 평소 노년의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 이를 실천하려면 무엇보다 샤프한 사고(思考)를 지녀야 겠다. 그러기 위해선 아집과 노욕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야 할 것이다. 헛된 욕심과 쓸데없는 고집은 노년의 삶을 해치는 원인이 될 수 있잖은가. 그러므로 건강한 심신이야말로 노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자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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