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留學)의 사전적 정의는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것이다.  삼국시대의 유학은 왕족 및 귀족중심의 유학으로 선진문물의 습득보다는 정치적인 외교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특히 당나라의 대외개방 정책에 부응하여 주변국들의 귀족자제들을 숙위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유학을 받아들여 근위병으로 근무하게 하는 등 정치적인 인질로 활용했다.  반면 불교의 유입과 함께 구도(求道)의 法을 얻기 위한 승려들의 유학은 정략적인 유학보다 연원이 깊고 시기도 빠르다.  신라 최초의 유학 승은 각덕이다. 각덕은 진흥왕때 활약한 승려로 양나라에 유학해 549년에 귀국하면서 최초로 불사리를 이땅에 가져온 승려다. 이후 565년에는 명관스님이 진나라에서 불교경론을 가지고 귀국해 불교문화의 진흥에 앞장선다.  화랑의 세속5계로 유명한 원광법사는 진나라로 유학을 가서 수나라를 거쳐 진평왕22년 600년에 귀국해 선덕여왕 9년 640년에 황룡사에서 입적했다.  원광의 입적 이후 자장이 643년 귀국함으로써 불교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된다.   자장은 당으로 유학을 떠나 7년의 공부끝에 귀국하면서 부처의 사리와 금란가사 경전을 비롯 불교 관련 법구들을 가져와 불교의 제도화를 가져온 당대 최고의 승려다. 신분 역시 진골출신으로 귀국과 동시에 선덕여왕에게 황룡사 9층탑의 건립을 건의하는 등 전국 곳곳에 10곳의 사찰을 건립하기도 했다.  이후의 인물로는 의상을 들 수 있다. 대당 유학길에 오른 의상 역시 670년 귀국해 불교진흥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삼국유사 효소왕 죽지랑조에 언급된 원측법사는 당시 해동의 고승으로 존경받던 신라 왕족출신이다.  그는 15세에 당으로 유학을 간후 현장법사의 문하에서 유식론을 배운 뒤 입적할때까지 당에서 활동했다. 또 삼국유사에는 천축으로 간 여러 법사들을 언급하고 있다.  신라인 아리나 발마는 중국에서 불법을 구하다 627년 장안을 떠나 천축에 도착해 나란타사에 머물며 율장과 논장을 공부하다 신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70세에 입적했다. 이후 혜업 현태 구본 현각 혜륜 현유같은 법사들이 불법을 찾아 천축으로 갔으나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8세기에 들어 중국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승려는 중국의 고승 불공의 6대 제자로 자리매김 한 신라인 혜초다. 혜초는 어릴때 유학을 가 723년부터 727년까지 4년간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서역일대를 둘러보고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여행기를 남겼다.  이처럼 당시의 유학 승들은 이땅에서 구하지 못한 법(法)을 얻기위해 유학길에 올라 일부는 귀국해 선각자로 우뚝서는가 하면 일부는 현지화 되기도 했다.  구산선문의 태동과 함께 수많은 사찰들이 산야를 수놓고 있지만 신라이후 현존하는 고찰들의 대부분이 자장 의상을 비롯 원효 등을 창건주로 내세우고 있다.  진위여부는 치치하더라도 이는 이들의 왕성한 활동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국내파인 원효 역시 민중들의 교화를 위해 이땅에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며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불교의 유입 이래 국가의 흥망성쇄에 따라 사찰도 없어지고 이름도 달리했지만 유명한 고승들에 의해 다시 중창되거나 재건돼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 왔다. 특히 조선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임란이후 파괴된 사찰들이 하나 둘 중건되는 등 일신을 변모해 왔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불교유적들과 추구하는 이념과 사상들은 쉼없이 변하고 새로운 틀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유학의 본질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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