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인체에 가해지는 통증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서 약에 의존 하곤 한다. 진통제의 힘을 빌면 여러 시간 동안 그 아픔을 잊을 수 있잖은가.
그러나 요즘 극한 폭염만큼은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어도 피할 묘약이 없다. 오죽하면 폭염에 의한 온열 질환으로 목숨까지 잃을까? 극(極)자가 붙은 기후 이상 변화는 우리에게 이젠 공포로 다가온 지 꽤 됐다. 우리네 삶을 위협하는 날씨인 극한 폭염, 극한 혹한이 그것이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은 수 십 년 전부터 우리가 우려해 온 일이다. 그렇지만 이렇듯 빨리 기후 이상 징후가 우리 앞에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 하긴 강렬한 뜨거운 태양빛이 우리나라를 삼키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 만은 아니었다.
이런 불 가마솥 같은 무더위가 어찌 현대에만 발생 했으랴. 기후 양상은 달랐을지 모르겠으나, 조선 시대 사람들도 폭염을 ‘교양(驕陽)’이라고까지 칭할 정도였다. 그 당시에도 날씨가 얼마나 무더웠으면 ‘교만한 태양’이라고 불렀을까. 그때 학자 김종직은 " 7월인데도 벌써 태양은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 수많은 농작물에 흉황이 들었다.”라며 그 시절 폭염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 후기 학자 장유의 기록에서도 폭염을 '교양'이라고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 올해의 심한 가뭄은 누구의 책임이던가. 교만한 태양이 하늘 높이 치솟아서이다.” 라며 머리 위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태양을 한껏 원망했다.
조선 후기 명군이라 일컫는 정조이다. 정조 18년 여름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이다. 일꾼들이 심한 폭염에 시달리자 정조는, “불쌍한 백성들을 위하여 처방을 연구한 약을 조제해서 보내니 더위로 인한 증세에 한 정 내지 반 알을 물에 타서 복용하라.”라는 지시와 함께 ‘척서단’이란 알약 4,000 여 알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정조 실록 18년 음력 6월 28일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오늘 텔레비전 뉴스에선 소방관, 그리고 교통 경찰관의 근무 실태를 방영 했다. 소방관은 두꺼운 재질의 보호 복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착용한 후 도심지에 있는 벌집 제거를 하는 모습이 영상에 비쳤다. 
 
올 여름 같은 극한 폭염엔 일상복 차림으로 문밖만 나서도 흘린 땀으로 금세 옷이 젖고 숨이 턱턱 막힌다. 하지만 이들은 통풍이라곤 전혀 안 되는 보호 복으로 중무장을 한 채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교통 경찰관 또한 거리를 무수히 달리는 자동차 및 태양에 달궈진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폭염을 견뎌내고 있었다.
뉴스를 통하여 이들을 대하고보니 다시금 조선 후기 왕 정조가 폭염에 노역하는 백성을 위해 내린 ‘척서단’이 떠오른다. 정조처럼 이 약을 그들에게 조제 해 줄 순 없다. 그러나 그들의 폭염으로 인해 겪는 직업적 고충에는 한번쯤 귀를 기울여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입추가 지나자 다소 폭염은 한 풀 꺾인 듯하다. 허나 해가 거듭할수록 지구는 수시로 얼굴을 바꾸고 있다. 훗날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지 장담 못할 일이다. 위에 언급한 소방관, 경찰관 만 해도 그렇다. 내년 여름에도 폭염으로 인하여 이들이 겪는 고통은 반복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극한 날씨 상황 속에서도 몸 사리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이들에게 국가적인 배려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 분들의 투철한 직업의식 때문에 우리가 그들로부터 삶의 안전을 부여받고 있잖은가. 이에 국민으로서 그들이 폭염으로 겪는 애환에 적으나마 관심을 가져야 도리일 듯해서 이 글도 적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