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古典)’의 국어사전 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전’ 항목에는 유의어가 셋 있지만 이 글의 의도와 관계가 깊은 것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혹은 ‘2세기 이래의 그리스와 로마의 대표 저술’ 두 가지 풀이가 되겠습니다. 단순히 오래 되기만 했다고 고전으로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시대가 거듭되어도 끊임없이 언급되거나 상기되어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작품을 가리키거나 작품성과 완성도가 뛰어난 계속 활용될 가치가 있는 작품을 이렇게 지칭합니다. 동서양을 아울러 고전이라고 할 문학 작품이 한, 둘은 아니지만 서구 문화의 뿌리를 형성하고 오늘날까지 계속 읽히면서 재해석되어 다른 예술 분야에도 모티베이션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경,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대표로 꼽을 수 있겠지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난해하기로 정평이 난 소설 ‘율리시즈’도 호머의 ‘오디세이아’를 오마주하고 변주한 작품이지요. 요즘 입소문을 타는 영화가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화제의 그 영화입니다. 개봉하는 첫날을 기다려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비교적 호머의 오디세이아 내용을 충실히 따른 편이더군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공통적으로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합니다. 한 이십 년 전쯤인가, 일리어드를 바탕으로 연출한 ‘트로이’라는 영화도 생각납니다. 꽤 비장한 그리스 비극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파리스 헥토르......, 트로이전의 승리와는 별개로 아무리 용맹하고 뛰어난 영웅이라도 인간인 이상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 죽음인 것을 엄숙하게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눈 앞에서 장자가 죽음을 당하고 적인 아킬레우스에게 그 시신조차 모욕당하는 것을 보는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의 비통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일리아드가 인간의 숙명을 다루고 있다면 오디세이아는 또 그것과는 다른 무엇을 이야기하지요.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 성에 들여보낼 지략을 낸 이가 오디세우스인 것은 그가 그만큼 영리하고 꾀바른 사람이란 걸 보여줍니다. 작은 나라 이타카의 왕인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동원령을 피하려고 미친 시늉을 해 보지만 들통이 나 할 수 없이 병력과 함께 전쟁에 동원됩니다. 아마 오디세우스는 적당히 꾀바르고 비열한 점도 지닌 캐릭터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지략으로 트로이 성 안에 병사들이 숨은 목마를 들여서 지지부진하게 끌던 트로이 전쟁을 끝내는 데 큰 기여를 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도 그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10년 동안 바다 위를 떠돕니다. 오디세우스가 데리고 떠났던 10척의 함선과 병사들을 모두 잃고 거지꼴로 10년이나 지나 이타카로 귀향하게 된 것은 탐욕과 의심, 잠 등의 극복하지 못한 인간적 한계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잠이 들어 있는 동안 배에 탄 일행의 의심과 탐욕은 금기를 깨고 바람주머니를 열게 되었고 눈앞에 고향을 두고도 폭풍에 멀리 휩쓸려나가 오랫동안 표류하게 됩니다. 또, 오디세우스가 잠들어 있는 동안 굶주림을 못 이긴 병사들이 금기를 어기고 아폴론의 소를 잡아먹습니다. 칼립소와 7년을 지내는 동안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망각하고 살았습니다. 잠과 망각에서 깨어나서야 오디세우스는 집으로의 행로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바다 위를 떠돈 10년은 오디세우스에게 자신이 인간임을 처절하게 자각하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놓도록 몰아친 시간이었습니다. 표류와 모험과 실패를 겪으며 그는 자신을 수식하던 지위, 명예, 재물, 자만심이라는 장식이 제거된, 운명과 자연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분투한 10년이라는 시간은 오디세우스가 비로소 투명한 맑은 눈으로 자기를 볼 수 있기까지의 시간입니다. 귀향이란 그에게 인간인 자신의 본질을 마침내 자각하고 아프게 성찰할 능력을 갖추게 된, 진정한 의미의 자기 인식의 힘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어떤 여배우가 명문가 의사 집안이라고 자기 집안 자랑을 했다가 오히려 된서리를 맞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자만과 자랑이 앞서다 보니 우리 역사의 굴곡은 보지 못했나 봅니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알려고 하는 노력도 없었던 게지요. ‘고전’이 오래 된 것이란 의미를 담는다면 역사도 훌륭한 고전입니다. ‘Oldies but goodies’란 영어 표현이 있습니다. ‘오래 된 것이 좋은 것, 구관이 명관’ 정도로 풀어볼 수 있겠군요. 그러나 오래되었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의 가치는 시간을 초월한 지혜와 가치를 배워 삶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특히 젊은이들은 글로 쓰인 문자보다 디지털 신호가 표현하는 문자를 더 선호합니다. 책에 비해 휴대가 편리하고 언제 어디서든 접속만 하면 아무리 방대한 양의 자료라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그렇겠지요. 고전이라는 영어단어 ‘CLASSIC’은 원래 서지(書誌)나 전적(典籍)이라는 아날로그적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러니 가끔은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아 고전 서적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