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청년 세대의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치의 변화가 아니다. 심각한 일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국정운영과 나라의 미래에 대해 사실상 ‘희망을 접었다’는 절박한 경고음이다. 본래 정치(政治)와 경제(經濟)의 근본은 ‘경세제민(經世濟民)’에 있다. 세상을 바르게 다스려 곤궁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것이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경제의 본질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정치는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대한민국 가구의 38.6%, 약 40%에 달하는 무주택 서민과 청년들은 세력도, 연줄도, 스피커도, 여론을 주도할 능력이 없다. 힘이 없기에 이들의 목소리는 늘 약하고, 거대한 기득권의 담론 속에 묻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목소리가 작다고 해서 그 고통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조직화 된 힘은 없지만 하루하루 절망을 견뎌내는 힘없고 어려운 이들을 먼저 돌아보고 세워주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존재하는 진짜 이유가 아닌가. 집 없는 서민과 미래가 불안한 청년들의 절규를 외면한 채 기득권층의 자산 보호에 골몰하는 정치는 경세제민의 정신을 저버린 것과 다름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구조적으로 청년이 자립하고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치솟는 주거비, 심화되는 불평등과 양극화 속에서 결혼과 출산은 이미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청년이 살 수 없는 나라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책은 본질적으로 ‘가치 판단’을 동반하는 ‘선택’의 문제다. 모든 세대, 모든 계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완벽한 정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성세대의 현상 유지 욕구를 충족하는 데 집착한다면 청년의 미래는 없다. 반대로 청년 세대와 무주택 서민에게 미래를 열어주려면 기성세대의 기득권 일부를 손대는 개혁이 필수적이다. 결국 어떤 세대,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청년과 서민 문제 해결의 가장 핵심적인 고리는 단연 부동산이다. 정부는 연일 주택 공급 확대를 외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아파트 신축 등 주택 공급은 계획부터 입주까지 최소 3년에서 5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린다. 지금처럼 부동산 기대수익률이 높은 상태에서 이 시차 동안 집값이 계속 오르면 청년들과 무주택 서민들은 집을 살 기회를 영영 잃고 시장에서 소외된다. 따라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기득권 목소리 큰 사람들이 외치는 공급 문제가 아니라, 기대수익률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 투기적 수요를 강력히 억제해 집값을 실질적으로 하락시키는 일이다. 물론 청년과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정부 차원의 장기 임대주택공급 확대는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정부들처럼 대출 규제를 풀어 청년들에게 ‘빚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것은 올바른 대책이 아니다. 이는 청년들을 영원한 채무의 늪으로 몰아넣고 영끌의 비극을 반복하게 만들 뿐이다. 집값 하락이 가져올 여러 부작용들이 두려워 수요 억제와 가격 조정을 외면한다면 청년 주거 문제는 영원히 풀 수 없다. 국정 기조로 자주 언급되는 ‘실용주의’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과연 지금의 실용이 현실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과감히 깨부수는 도구인가, 아니면 기득권 구조를 인정한 채 미세 조정만 거치는 현상 유지의 다른 이름인가. 현상을 인정하는 소극적 실용주의로는 이 거대한 구조적 절망을 바꿀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을 무릅쓰더라도 구조를 바꾸는 용기있는 ‘개혁적 결단’이다. 표를 잃을지언정 미래 세대와 목소리조차 내기 힘든 무주택 서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단호한 가치 판단이 서야 한다. 정치는 어렵고 힘없는 사람들과 구하는 경세제민이어야 한다. 정책의 방향타를 어디로 돌릴 것인가. 기성세대의 기득권인가, 목소리 작은 청년 세대와 무주택 서민의 미래인가. 조세저항으로 목소리 큰 기득권에 등 떠밀려 허둥지둥하며 내놓는 미봉책인가. 여당인 민주당의 새로운 당 대표가 선출되어 기대를 가져 본다. 정부·여당이 청년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한다면, 이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지방은 채우고 서울을 비우는 전면적인 국토균형발전정책 집행과 망국적 부동산공화국 해체로 구국적 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 청년의 미래가 곧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