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비례대표제는 출발부터 대표성과 거리가 멀었다. 1963년 총선에서 박정희 정권이 도입한 전국구(全國區)가 그 시작점으로, 미국식 양당제를 유도한다며 전국구 의석의 최소 절반을 제1당에, 3분의 1을 제2당에 배분하도록 해 거대 정당에 유리하게 설계했다.    전국구는 1972년 유신헌법 제정과 함께 사라졌다가 1981년 전두환 정권 때 부활했다. 지역구 제1당에 전국구 의석의 3분의 2를 통째로 몰아주는 방식으로 독재정권을 떠받치는 도구로 기능했다.전국구는 정치자금과 국회의원 배지를 맞바꾸는 추악한 뒷거래의 온상이기도 했다. 선거 때마다 정당 지도부는 재력가들에게 당선 안정권 순번을 내줘 막대한 선거자금을 조달했다. '전국구'의 전(全) 자를 돈 전(錢) 자로 바꾼 '전(錢)국구'라는 멸칭이 따라붙었다.    1992년 총선 때 김대중·이기택 공동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전국구 공천 때 특별당비 명목으로 1인당 30억 원의 '정액헌금'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자산이 넉넉한 민주자유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錢)국구'의 오명은 정치개혁과 함께 차츰 퇴색했다. 2000년 총선 때 '전국구'라는 이름이 '비례대표'로 바뀌고 선거비용 보전 등 선거법 손질이 이어지면서 돈과 의석을 주고받는 관행도 크게 줄었다. 그러나 돈이 물러난 자리는 계파 정치가 차지했다.    2020년 총선에서는 기상천외한 위성정당이 출현했다. 민주당은 공수처법 처리를 위해 군소정당이 요구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해 강행 처리했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선거용 비례 정당을 만들었다. 이를 비난하던 민주당도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어 소수 정당의 요구에 응했다.위성정당을 통해 두 차례나 비례대표 금배지를 단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가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의원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혀 논란이다.    자신이 물러나면 기본소득당이 원외정당이 된다는 이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 내부 사정이다. 독재를 떠받치고, 돈으로 사고팔고, 계파끼리 나누고, 하다 하다 위성정당이란 세계토픽까지 만들어낸 게 한국 비례대표 제도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비례대표 제도를 이대로 놔둘지 여야는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위성정당 출현의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은 결자해지의 자세를 갖기 바란다. 연합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