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재료라도 원자가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 성질은 크게 달라진다. 탄소가 원자 배열에 따라 흑연이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포스텍과 KAIST 공동연구팀이 이 같은 원리를 이용해 그동안 주로 정보를 ‘기억하는’ 용도로 연구돼 온 반도체 물질을 정보를 처리하는 ‘논리 반도체’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포스텍 화학공학과 노용영 교수와 이재윤 통합과정 연구팀,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권지민 교수·이용우 박사 연구팀은 ‘κ상(카파상) 인듐 셀레나이드(In₂Se₃)’를 이용해 4인치 웨이퍼 크기의 논리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됐다.인듐 셀레나이드는 매우 얇게 만들 수 있고 전기가 잘 흐르는 특성이 있어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기존에 주로 연구된 구조는 한 번 받은 전기 신호의 흔적을 기억하는 특성이 강했다.이런 성질은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에는 장점이지만, 계산을 담당하는 논리 반도체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논리 반도체는 같은 신호가 들어오면 언제나 같은 결과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연구팀은 같은 인듐 셀레나이드 가운데서도 원자 배열이 다른 ‘κ상’에 주목했다. κ상은 이전 전기 신호를 기억하는 성질이 억제돼 있어 논리 반도체로 사용하기에 유리하다.연구팀은 반도체 제조 현장에서 사용하는 열증착 방식으로 인듐 셀레나이드를 쌓은 뒤 250℃에서 열처리해 두께 약 10나노미터의 κ상 박막을 4인치 웨이퍼 전체에 고르게 형성했다.특히 공정 온도가 낮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존 실리콘 반도체 위에 새로운 반도체 소자를 쌓으려면 아래쪽 회로가 높은 열에 손상되지 않아야 한다. 이번 기술은 이미 만들어진 실리콘 회로 위에 다른 기능의 반도체를 층층이 쌓는 ‘3차원 집적’ 기술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성능도 안정적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4인치 웨이퍼에 트랜지스터 576개를 만들어 시험한 결과 웨이퍼 어느 위치에서도 비교적 균일한 특성을 확인했다. 100나노초의 짧은 전기 신호를 1천만 차례 반복해서 가해도 안정적으로 작동했다.연구팀은 κ상 인듐 셀레나이드 트랜지스터를 다른 종류의 반도체와 결합해 입력된 전기 신호를 반대로 바꿔 출력하는 기본 논리회로인 ‘인버터’도 구현했다. 단순히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논리회로로 작동할 가능성까지 확인한 것이다.연구를 주도한 이재윤 포스텍 통합과정은 “인듐 셀레나이드는 주로 ‘기억하는 메모리 반도체’로 연구됐지만, 이번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κ상을 안정적인 논리 반도체로 확장했다”고 연구 의미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