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득 화가 루벤스가 그린 《로마의 자비》란 제목의 회화가 떠오른다. 처음엔 이 그림 속 여인이 자신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무릎 위에 피골이 상접한 한 사내를 뉘인 채 젖을 빨리는 모습이 낯 뜨겁게만 느껴졌었다. 그러나 곧 이어서 이 그림 속 장면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의 문필가가 지은 글 내용이 생각나서이다. 그림 속 여인 페로는 감옥을 찾아가서 굶겨 죽이라는 형을 선고 받고 갇힌 아버지인 키몬에게 자신의 젖을 물린 것이었다. 얼마나 지극한 효심인가. 이 그림은 로마의 문필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당대에 떠돌던 공적 이야기와 속담을 집적(集積)해 편찬한 9권의 책 중, 한 장의 주제로 다루어진 어느 글에서 영감을 얻어서 그린 그림이란다. 1612년에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그린 것으로 보아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그 당시에도 효(孝)는 인간 미덕 중 으뜸으로 꼽힌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가장 인간애의 밑바탕이라 할 부모에 대한 효심을 현대인들은 많이 상실한 듯하다. 날만 새면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자식이 부모를 해쳤다는 뉴스 때문이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귀라도 씻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듯 패륜(悖倫)과 패악(悖惡)이 사회전반에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부모가 늙고 병들면 마치 무슨 짐짝 취급하여 외면하는 것도 불효막심한 일이다. 그런데 심지어 자신을 낳아주고 헌신과 사랑으로 키워준 부모에게 칼끝을 들이대다니.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일이라서 차마 하늘보기 두렵다. 이렇듯 항상 진심을 다하여 봉양할 부모를 무슨 버러지만큼도 안 여기니 타인의 생명쯤은 한낱 파리 목숨보다 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 때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에게, “너 없인 못 산다”라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노라” 라는 말을 속삭여온 정 따윈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걸핏하면 귀한 목숨을 살해 하곤 한다. 이혼 수속 중인 전 처를 살해하는가 하면, 변심한 연인을 스토킹 하다가 죽이는 등 강력범죄가 연일 발생하는 이즈음이다. 이러한 인간성 말살 및 인명경시 풍조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 할 자신의 부모를 하찮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 됐다면 지나치려나. 사실 부모한테 효를 다하는 사람은 매사가 반듯한 사람이라고 칭할 만하다. 인간이 타인에게 지녀야 할 염치, 인정, 배려, 생명 존중 등을 기본적으로 갖추었기에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게 아닐까 싶다. 루벤스의 그림 속 여인 페로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자신의 아버지가 감옥에 갇혀서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자 거리낌 없이 자신의 가슴을 풀어 젖혔잖은가. 이것이 진정한 효도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부모에 대한 효심보다는 물신주의에 의하여 오로지 물질에만 눈이 멀었다. 재산을 노리고 부모를 해하는가 하면, 자신에게 용돈을 안 준다고 부모를 때려죽인 어느 10대의 행태가 이를 방증한다. 이로보아 학교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가르칠 덕목은 부모님에 대한 효 실천이 우선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고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어도 인간답지 않게 행동 한다면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잖은가. 이런 현상은 사람답게 사는 그 이면엔 부모에 대한 효심이 근본적으로 작용 하고 있어서이다. 즉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사람은 무엇으로든 성공한다. 이는 하늘의 진리이다. 그러므로 학교에선 부모를 공경하고 웃어른을 섬길 줄 아는 품성이 반듯한 덕목을 공부 못지않게 학생들에게 교육 시켜야 한다. 또한 인성과 지혜, 지식을 두루 갖춘 청소년들이 미래가 보장되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절실한 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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