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이 물러나고 어느새 바람 끝이 서늘하다. 매미 소리 잦아든 자리에 풀벌레가 울고, 높아진 하늘 아래 햇빛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다시 9월이고 어느덧 일흔이 되었다.    공자는 이 나이를 종심(從心)이라 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 막상 그 문턱에 서보니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긴 세월을 건너며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스스로 알게 되는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반듯한 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고, 애써 세운 계획이 무너지고, 조금만 눈감으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렇게 살면 손해야. 세상을 바보 같이 살아.” 필자라고 계산할 줄 몰랐겠는가. 그러나 돈 몇 푼을 얻고 밤에 혼자 누웠을 때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것은 이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밀어내고 한 계단 올라섰다 해도 그 사람의 아픈 얼굴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면 그것 역시 성공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때로는 바보가 되기로 했다.    노자는 큰 지혜가 오히려 어리석어 보인다는 대지약우(大智若愚)를 말했다. 이제야 그 뜻을 조금 알 것 같다. 세상 셈법을 몰라 손해 보는 것과, 그 셈법을 알고도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손해를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    필자는 후자의 바보로 남고 싶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살아보니 돈이 없어 겪는 서러움도 있고, 물질이 인간 존엄을 지켜주는 순간도 분명 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돈이 사람보다 앞자리에 앉는 순간이다. 이익 때문에 관계를 이용하고, 자신의 허영을 위해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조금 덜 가져도 저렇게 살지는 말자. 칸트가 말한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명제도 결국 거창한 철학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힘없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예의를 지키는 것,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내 욕망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 그런 평범한 하루 속에서 성찰은 비로소 삶이 된다.    물론 그렇게 산다고 세상이 언제나 선의로 답하지는 않았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다. 이미 끝난 일을 머릿속으로 수십 번 되돌리며 하지 못한 말을 되뇌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잠들었을지 모르는데 필자는 왜 혼자 밤새 싸우고 있는가. 그때부터 작은 연습을 시작했다. 필자가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한다. 잘못했다면 사과하고, 해야 할 말이 있다면 한다. 그러나 필자가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까지 붙잡고 씨름하지는 않겠다. 스토아 철학의 아파테이아(Apatheia)는 어쩌면 이런 것인지 모른다.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바람이 분다고 내 마음속까지 언제나 폭풍이 일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 세상을 바꾸려 했고, 사람을 바꾸려 했던 일들을 생각해 본다. 일흔에 와서야 가장 어려운 일은 마음 다스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살면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일도 많았다. 사람이 떠나고,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공들인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라고 물었다. 이제 질문을 바꾸어 본다. ‘이것까지 내 삶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질문 하나가 삶을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었다. 니체가 말한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도 좋은 일만 사랑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필자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시간까지 오늘의 필자를 만든 한 조각이었다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상처가 있었기에 다른 사람 아픔 앞에서 말을 낮추게 되었고, 실패했기에 다시 일어나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떠나보낸 것이 있기에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감사는 거창하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 따뜻한 밥 한 끼와 안부를 물을 사람이 있는 것, 창밖으로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작아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여름 내내 푸르렀던 나무도 이제 하나씩 잎을 내려놓을 준비를 한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린다고 실패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푸르렀으니 다음 계절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뿐이다. 필자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더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씩 놓아주면서 깊어지는 사람. 가진 것을 자랑하기보다 나눌 줄 알고, 상처받았다고 세상을 미워하기보다 사람을 믿을 작은 자리 하나쯤 남겨두는 사람. 세상이 그런 사람을 바보라 부른다면 바보여도 좋다. 조금 손해 보아도 괜찮다. 남보다 몇 걸음 늦어도 좋다. 마지막 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조금 더 가질걸”보다 “그래도 끝까지 나답게 살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바꿀 수 있는 것에는 최선을 다하고, 바꿀 수 없는 것은 조금씩 놓아주며 걷는다. 수없이 흔들리고도 여기까지 걸어온 필자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잘 걸어왔다. 남은 길도 서두르지 말고 가자. 가을바람처럼 담담하게, 끝까지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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