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언어는 사람살이의 깊은 ‘속내’를 엿보게 하며, 감정의 바닥을 자극해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문학작품에서 그런 예를 적잖게 보아 왔다. 김영랑과 서정주는 전라도 사투리로, 박목월과 박재삼은 경상도 사투리로, 김광협과 문충성은 제주도의 사투리로 시를 써서 향토적인 정서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독특하게 떠올려 보인 시인들이었다. 작고한 이들 시인은 지역마다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언어가 구사되던 소위 ‘사투리 시대’에 태어나 자라면서 그런 언어에 익숙한 경우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세태의 변화와 더불어 언어 문화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영상문화와 교통, 통신의 급속한 발달로 사투리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으며, 우리의 삶도 그만큼 획일화되는 세계로 오므라드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사투리와 향토적 정서에 애착을 갖고 시를 쓰는 시인들이 없지 않다. 근래에 시집 ‘웃음이 파먹은 밥’을 낸 박숙이 시인은 그 대표적인 경우로 보인다. 그의 시편들은 구어체의 토속적인 경상도 사투리 구사가 향토적 정서를 감칠맛 나게 하는 데다 웃지만 못 할 특유의 해학도 거느리고 있다. 게다가 그 해학에는 삶의 애환과 지혜가 스미거나 저며 있으며, 보통 사람(서민)들의 인정과 인간애가 질박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어 시인의 그런 마음자리를 엿보게도 한다.   “첫물은 사위도 안 준다는/애리애리한 봄 정구지 한 단을 사와가/이 친구 저 친구 생각하미 찌짐을 부친다”라고 시작되는 시 ‘장물 종재기 같이’는 부추전을 부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만의 감성과 언어 감각으로 빚어 보인다. 부추전이 노릇노릇하게 잘 굽히고 잘 뒤집히자 “아따, 인생도 이리 한 번 후딱 뒤집히져 봤시면”이라며, 삶이 녹록지 않은 한 친구 생각을 절절하게 떠올린다. “종재기에 찍어 먹을 초장을 만드는데/어인 일로 장물 종재기 같이 생이 짜라빠진 친구가/퍼뜩 떠오르는 기라/전화를 걸어 뜨실 때 먹거러 퍼뜩 뛰어온나 카이/비도 오고 해서 재미로 점 백 원짜리 화투 치고 자빠졌다 카네/야야, 화투판 뒤집고 퍼뜩 온나 캐놓고/전화를 끊고 가마이 생각해 보이끼내/새끼대이처럼 밸밸 꼬인 니 인생도 마/전 뒤집듯, 화투판 뒤집듯,/확 뒤집어엎어 버렸으면 안 좋것나 이 문디 팔자야” ―‘장물 종재기 같이’ 부분 ‘정구지’(부추), ‘생각하미’(생각하며), ‘사와가’(사 와서), ‘찌짐’(전), ‘봤시면’(봤으면), ‘종재기’(종지), ‘짜라빠진’(많이 찌들은), ‘퍼뜩’(빨리), ‘기라’(거라), ‘뜨실’(따뜻할), ‘뛰어온나’(뛰어오라), ‘자빠졌다’(넘어졌다), ‘카네’(하네), ‘캐놓고’(해놓고), ‘가마이’(가만이), ‘보이끼내’(보니까), ‘새끼대이’(새끼줄), ‘문디 팔자’(좋지 않은 팔자) 등 경상도 사투리들이 그대로 구사돼 토속적인 시적 묘미가 돋보이는 이 시는 한 친구를 향한 삶의 비애와 그 반전을 바라는 심경을 극대화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그 심경을 “짜라빠진 장물 종재기 같이 앞뒤가 희망 없이 까만기(까만 게)/생감자 씹은 듯 내 가심(가슴)에 아려 와서는/찌짐 한 쪼가리 입에 뚝 띠(떼어) 넣는데 고마(그만)/눈물을 뚝 뚝 뚝, 쏙 빼놓고 마는 기라(거라)”라고, 인정이 넘치는 휴머니티를 질박하게 쏟아낸다.   시 한 편만 예로 들었으나 이 시집에는 독특한 시적 묘미와 읽는 재미까지 북돋우는 사투리 구사와 저류에 삶의 애환을 뛰어넘으려는 지혜와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려고 하는 해학 속에 다져진 인간애가 질박하게 관류하고 있다.   사투리는 표준말의 반대 개념에서가 아니라 한정된 표준어의 어휘와 용례를 보완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언어의 보물창고’이며, 고유 정서나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천대 받아온 사투리를 보존하고 유지함으로써 문화의 다양성과 개성을 살릴 필요가 있지 않을는지…. 표준어를 너무 강조해 온 나머지 모든 걸 그 틀에 맞춰 거북스러운 언어생활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사유와 정감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역할을 했던 사투리들이 다시 설 자리를 찾아 우리의 삶도 그만큼 더 풍요로워졌으면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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