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자생력은 참으로 끈질기다. 수 년 전 집앞 호수 위에 연꽃 몇 송이가 눈에 띄었었다. 그것이 해를 거듭할수록 뿌리를 뻗쳐서 요즘은 연꽃이 호수 수면 위를 제법 많이 뒤덮고 있다. 호숫가 둘레길을 산책하며 분홍색, 흰색 등의 색깔로 피어나는 연꽃을 바라볼 때마다 혼탁한 가슴이 한껏 정화 되는 느낌이었다. 뿐만 아니라 순백의 백련(白蓮)에선 그 모습이 너무 고아해서 기품 있는 귀부인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호수의 물은 그다지 맑지 않다. 그러나 연꽃이 자랄 때는 물이 맑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연꽃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성정으로 불리는 불가의 지주이기도 하다. 호수 둘레 길을 산책할 때마다 연꽃에 홀려서 걸음을 멈춘 채 한동안 바라보곤 하였다. 이 때 연꽃은 필자로 하여금 새삼 삶의 진리를 일깨워 주는듯 하다.  연꽃의 향훈은 멀리서 맡을수록 은은하고 향기롭잖은가. 마치 덕(德)을 갖춘 사람과 같다. 또한 물에 꽃잎이 씻겨도 결코 요염하지 않다. 순백(純白)의 모습을 잃지 않으니 꽃 중의 군자(君子)라 칭할 만하다. 연꽃은 정오를 전후로 꽃을 피운다고 하여 자오련(子午蓮)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연꽃은 밤새 다물었던 꽃잎을 아침이면 조금씩 연다. 그것을 보기 위하여 아침 일찍 호수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꽃들을 들여다봐도 혜안을 미처 갖추지 못해서인가 보다. 꽃잎이 열리는 모습을 좀체 볼 수 없었다.   밤새 입을 다문 연꽃이 피어나는 광경을 보려면 곁에서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늘 조급증에 시달려서인지 여유와 끈기가 부족하다. 이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연꽃이 꽃잎을 벌리는 모습을 직접 확인 못하여 못내 아쉬웠다.  한편, '삶을 언제나 여유롭게 살아볼까' 라는 생각에 불현듯 찌든 일상을 탈피해 며칠쯤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는 생각뿐, 삶에 발목을 잡혀서인지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바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입에 달고 산다. 만나는 사람마다 첫인사말이, "무척 바쁘시죠?" 이다. 필자 역시 바쁜 게 사실이다. 삶에 떠밀려서 바쁘다.   또한 그동안 욕심주머니를 잔뜩 채우느라 더 바빴다. 하긴, 아기도 첫돌도 채 안되서 따뜻한 엄마 품을 벗어나 어린이 집으로 가기 바쁘다. 어린이들도 예닐곱 살 정도만 되면 유치원에서 영어 학원 등을 다니며 배움의 순례를 시작 하느라 바쁘다. 어린이들도 이토록 분주한데 생존경쟁에 시달리는 어른인 필자로선 오죽하랴.  평소 삶에 쫓기면서 사노라니 요즘 필자 마음 밭이 매우 삭막해진 듯하다. 그래서인지 마음속에 그리움이 고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 호수 수면 위에 피어난 연꽃을 바라 볼 때마다 묘한 그리움이 한 가지 생겼다. 연꽃이 개화하는 것을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이 그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마음도 필자에겐 그리움의 한 종류라고 말 할 수 있다.   어린 날 비 개인 하늘가에 찬란한 무지개가 뜨기를 고대 했으나 그것이 뜨지 않아서 실망한 적이 있다. 그 때 무지개를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한동안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린날 무지개를 그리워 한 것처럼 연꽃의 개화를 보고 싶어 했다.   그리움은 대상이 필요한 마음자락이다. 그 대상에 따라 그리움의 강도도 다르다. 쫓기듯 사는 일상에서 특정한 대상을 향하여 보고픔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정서의 특권이다. 가슴 속에 그리움이 가득 고인 사람은 마음이 순수하고 여유롭다. 필자 역시 이제라도 그동안 욕망의 뒤꽁무니만 뒤쫓던 발길을 잠시 멈춘 채, 가슴에 그리움을 간직해 볼까 한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이 가을을 지내고 싶다. 때는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올가을 대상 없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일지언정 은밀히 가슴 속에 지니고 싶다.   상실과 거둬들임으로 이율배반적 계절인 가을 이다. 하지만 가슴속에 그리움을 간직한다면 나날이 행복으로 충만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