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다. 놀기 좋은 계절이다. 지난 2006년 독서문화진흥법에는 9월을 독서의 달이라 했다.  글을 읽는데 무슨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있겠냐마는 날씨와 신경호르몬인 세라토닌의 변화를 감안해 가을이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라 했다. 그러나 출판유통전산망의 책판매량의 순위는 1월과 7월 3월의 순으로 가을은 책조차 팔리지 않는 비수기인 것으로 나온다.  화창한 가을날 독서는 육체적으로 보면 고문이다. 봄바람의 춘심처럼 가을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여행의 계절이라 함이 오히려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서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카피는 시대와 동떨어진 캠페인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독서하기 좋은 시간은 언제일까. 독서삼여란 말이 있다. 후한말 동우의 고사다. 동우에게 글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몰려들자 동우는 내게 배우려 하지 말고 집에서 몇번이고 책을 읽어라고 한다.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고 하자 동우는 겨울은 한해의 여가요 밤은 하루의 여가며 비 올때는 한때의 여가라고 했다. 비 올때나 하루 일을 마친 밤이나 수확을 끝낸 겨울의 시간에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여가는 각자의 삶의 방식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여가는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소위 짬을 내야 하는 것이다. 대다수는 독서든 운동이든 취미를 위한 시간들은 정해진 삶의 굴레에서 자신이 만든 여가에 할 수 밖에 없다.  실천은 자신과의 약속이며 성과가 눈으로 들어날때 가속화되고 일상이 되는 삶의 한 축이 된다. 그러나 독서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양식이라 했듯이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기준도 없는 자기만족의 상태일 뿐이다. 독서의 시간은 다른 일정보다 후순위로 밀려나고 종내에는 하고픈 목록에서 조차 사라진다. 독서는 남의 일이 되고 눈앞에 쌓인 현안들로 여가를 소비하기에 급급해진다.  하지만 독서가 일상화되지는 않더라도 동우의 고사처럼 비오는 날은 독서하기 좋은 시간이다. 비오는 날은 이성의 세계가 감성의 세계가 된다. 비와 관련된 시가 생각나고 영화와 음악이 떠오르고 유행가의 멋진 제목들이 입 밖으로 번진다.   하나 둘 셋 떠올리다 보면 비와 관련된 단어들이 불쑥 불쑥 꼬리를 물고 튀어 나온다. 또 비오는 날의 감정은 우울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밝음보다는 회색빛이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처럼 마구 헝크러진 모습이다.  어느 시인은 비오는 날은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날이라고 했다. 비가 내리자 머리에 소중한 가방을 쓰고 가면 그 가방은 가품이고 가슴에 품고가면 진품이라는 것이다. 비오는 날에는 가슴에 품은 이름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 사람이 진품이다.  역사적으로 책을 가까이했던 인물은 학자들이라 할 수 있다. 신라의 3최라 일컫는 최승우 최치원 최언휘를 비롯 문장가로 이름을 높였던 강수와 설총 등이다. 고려에 들어 이름난 문인들이야 열거할 수 없을만큼 많지만 이규보와 천책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정약용은 최치원 이규보 천책을 신라 고려의 3문재라고 극찬했다. 제왕으로 보면 백제의 근초고왕과 고려의 성종 조선의 세종과 정조다. 특히 정조는 홍재전서가 말해주듯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여 토론을 한뒤 기록했다는 점에서 책읽기가 여가의 활용이 아니라 일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독서의 이로움은 책에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깊게 만드는데 있다. 직접 질문하고 직접 헤매는 과정이야말로 독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은 다양한 미디어의 존재로 활자로 된 책이 외면받는 시대가 됐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도 이제는 핑계가 아니라 당연시되는 시대다.  그러나 비오는 날에 책을 읽어라는 동우의 일침은 여전히 오늘의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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