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리지역에선 세계 종가포럼이라는 이색 모임이 있었다. 우리나라와 세계 각지의 명문가들이 모여 전통과 미풍양식을 공유하며 교류하는 모임으로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했다. 이번 종가포럼에서는 우리고장의 경주최씨와 프랑스 남부 도르도뉴지방의 명문 라플랑가문이 자매결연을 가졌다. 두 가문은 중세부터 지역의 명문으로 명예를 지켰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온 유사점이 있었다. 이번 포럼에서 경주최씨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다시한번 회자되었다.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말며 사방 100리안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흉년이 든 해에는 전답을 늘리지 말고 내 집을 찾아온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라는 가훈이 그것이었다. 경주최씨 가문이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것은 부의 축적이 아니라 나눔과 베품, 구휼이었던 것이다. 영국에선 오늘부터 ‘레거시 10(legacy)’운동이 펼쳐진다. 유산의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운동이다. 이 불을 지핀 사람은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카폰 헤어하우스그룹 찰스 런스톤, 금융재벌 도드 차일드의 제이콥씨 등이다. 이들은 이미 서명작업을 마쳐 그들이 기부한 금액만 해도 5억파운드(8,864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운동은 영국인 상위 10%가 유산의 10%를 기부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아같은 캠페인에 영국민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며 향후 기부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비슷한 운동은 이미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가 그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워런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회장이 이미 재산의 절반을 기부했고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테드 터너 CNN창업자, 마크 정커버그 페이스 북 창업자, 조지 루커스 영화감독등이 곧 이들의 뒤를 따를 것이라며 절차를 밟고 있다. 이같은 캠페인은 최근 월가의 탐욕스런 돈잔치에 분노한 서민들의 항의시위가 미국전역에 번지고 이어 전세계가 가진자의 탐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연대해 개최하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우리나라의 지난 10.26보궐선거도 마침 이 시기에 열려 경제적 이슈가 선거판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제부양에 큰 기대를 걸었던 현 집권여당에 대한 실망이 표로 연걸됐고 그 중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의 분노를 산 것으로 보인다. 자유경제체제가 사회주의 보다는 우세하고 좋은 체제로 검증되고 있지만 부의 편중은 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재벌이 생기고 그 재벌이 부를 창출해 엄청난 고용창출과 부가가치를 만들지만 빈자의 확대와 배분의 편중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반면 가진자는 호화판 생활에 거침없는 돈잔치로 탐욕을 채워가는 현상에 분노하는 것이 최근 국제사회의 큰 흐름이다. 미국의 the giving pledge운동이나 영국의 legacy10운동은 이러한 민중의 저항에 지각있는 가진자들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돈의 가치를 축적에 두지않고 나눔에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사람들이다. 돈은 제대로 쓸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하며 또한 돈을 모은 보람을 느끼게 한다는 자각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얼마전 재벌가들이 막대한 돈을 사회에 환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사회환원은 탈세와 부정을 저지른 후 사회적 지탄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적 성격이 짙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어렵게 부를 축적한 사람과 없는 가운데서도 있는 것을 쪼개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그들이 우리사회를 보듬고 따뜻하게 덥혀 왔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사회도 영국의 legacy10과 같은 운동이 펼쳐져야 한다. 사회로부터 혜택받고 입은 은혜를 되돌려 빈부의 격차가 좁혀지고 가진 자의 배려가 공생하는 사회가 되도록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주요한 덕목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경주최씨 종가가 오래전 가문의 금과옥조로 여겼던 나눔과 베품이 지금 우리시대의 트랜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가진자들의 탐욕을 규탄하는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변 린 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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