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빚었던 한일관계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봉합단계로 들어선 양상이다.
한때 일본이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 축소를 검토하겠다는 등 갈등의 전선이 전방위로 확대되는 듯 했지만, 더이상의 마찰이 양국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는 공감대 형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동아시아 패권 다툼에서 한미일 공조 체제에 금이 갈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8~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계기에 한국과 일본은 최근 양국 간 갈등의 원인이 됐던 독도와 군대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져졌다.
청와대 측에 따르면,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9일 APEC정상회의를 마친 후 회의장을 나오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다가가 인사하며 5분여간 대화를 나눴다.
두 정상은 여기서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는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일관계에서 유독 강조됐던 개념으로 일각에서는 한일 간 과거사에 대한 해결 의지를 희석시킬 수 있다고 비판해오기도 했다. 때문에 이 대통령이 노다 총리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다시 강조, 대일(對日) 외교 기조를 원 기조로 되돌려놓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10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를 강조한 것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으로 새로운 게 아니다"며 "독도와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일본이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서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달 이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이후 일왕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고, 일본측이 발언 철회를 요구한 데 대해서도 "말 같잖은 주장"이라며 강력히 대응했던 것을 생각하면, 분명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이 대통령이 지난 5일 일본 전문가 5명을 청와대로 불러 자신의 일왕 발언과 관련 "역사 문제에 대해 (일본)총리가 여러번 사과하는 것보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일왕이 말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며 "발언이 왜곡된 채 일본에 전달됐다"고 말한 것도 한일갈등의 파고를 낮춰야 한다는 내부 분위기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