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측이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의 결정적 고비를 앞두고 날선 감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당초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아름다운 단일화'는 어느 덧 사라지고 비방전의 기운까지 감지된다.
중단됐던 단일화 협상을 어렵사리 재개하고 19일부터 다시 협상장에 마주 앉은 양측은 첫날 논의를 끝내자마자 협상 내용 유출 책임을 두고 '네 탓 공방'을 벌였다. 비공개하기로 했던 협상 내용이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됐는데, 양측 모두 상대방 캠프에서 나온 얘기라며 사과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양측은 이에 그치지 않고 협상 내용을 캠프별로 공개하며 협상 내용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아 혼란을 빚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 캠프에서는 원색적 표현까지 사용하는 등 야권 지지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20일 일부 언론은 19일 협상 내용과 관련, 양측이 '여론조사+α(알파)' 방식으로 가닥을 잡고 배심원제와 비슷한 공론조사를 여기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여론조사 대 공론조사 비율을 50 대 50으로 한다는 구체적인 비율도 적시했다.
민주당측은 이같은 보도의 인용자가 '안 후보 캠프 관계자'로 표시돼 있다는 점을 들어 안 후보측에서 협상 내용을 공개한 것으로 보고 강하게 반발했다. 문 후보 선대위의 우상호 공보단장은 19일 안 후보측으로부터 협상 내용이 새나가고 있다며 "언론플레이성 언급은 협상의 성패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자제 요청을 하기도 했다.
문 후보측 협상팀원인 김기식 의원은 보도 내용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리 정치라지만 이런 언론플레이는 정말 아니다"며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이런 허위사실을 이야기 하고, 이를 그대로 받아 쓰고…"라고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문 후보측은 수용 불가능한 공론조사 방식을 제안한 안 후보측이 제안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의심하는 눈치다.
반면 안 후보측에서는 오히려 "문 후보측에서 실시간으로 협상 내용을 생중계했다"며 분에 찬 표정을 지었다.
유민영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을 통해 "이건(협상 내용을 흘린 건) 누가 한 것인가. 주체가 분명히 있는 것이고 (기자) 여러분도 다 아실 것"이라며 "협의 과정의 막전 막후에서는 여러 일이 벌어진다고 하지만 심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민주당을 겨냥했다.
또 민주당측이 협상 내용 유출 용의자로 안 후보 캠프 정연순 대변인을 비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도 "무죄일 뿐 아니라 정당하다"며 "비공식적으로 이렇게 말했다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에 양측이 혼란을 방지하겠다며 협상 내용을 공개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문 후보가 "공론조사 등 안 후보측이 요구한 내용을 수용했다"는 취지로 언급하자 안 후보측이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하면서 신경전을 벌였다. 안 후보측은 '공론조사'에 대해서도 "그 표현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지지층 조사가 맞다"고 말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후보 간 신경전도 있었다. 문 후보는 이날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단일화 방식 논의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안 후보측에 제안했지만, 안 후보는 같은 날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적절하진 않은 것 같다"고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부터 양측이 감정적으로 대립하면서 단일화 이후 두 후보측 지지자들의 결집도 온전하게 이뤄지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부정적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두 후보가 단일화 후 '국민연대' 형태로 세력을 규합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벌써부터 양측 모두에서 부정적 기류가 흐르는 모습도 보인다.
안 후보측에서는 단일화 협상 중단을 선언하기 전부터 민주당측의 조직적 방해를 비난하며 문 후보 선대위측 핵심 관계자를 비롯한 실명을 거론하며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해 왔다. 안 후보측에 비판적 발언을 한 인사들의 목록을 리스트화 하기도 했다.
문 후보측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내에서는 벌써부터 단일화 이후 안 후보 캠프에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들을 '블랙리스트'로 정리하고 있다는 말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온다. 일부 안 후보측 인사에 대해서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다.
양측의 감정의 골이 깊어질 듯한 조짐이 보이면서 그동안 '쌍끌이 효과'를 이뤘던 동반 지지율 상승 효과도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측의 감정 싸움이 벌어지는 데 대해 염증을 느낀 중도층 지지자들이 무당파 또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쪽으로 이동하면서 박 후보가 반사 이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