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 고유섭은 ‘경주 기행의 일절’이라는 수필에서 ‘경주에 가거든, 시내를 쏘다니지 말고 곧장 문무대왕의 위대한 자취가 서린 대왕암으로 가라’고 역설했다. 양북의 동해바다와 대왕암을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한 석학의 이 한 마디에 경주시 양북면의 가치와 위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양북은 빼어난 신라의 유적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작은 경주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지역이다. 따라서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지만 스쳐가는 관광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여행자들에게는 감동을 주지 못했고, 지역민들이 얻은 경제적인 효과 또한 미약했다.
최근 경주시 양북면 문화자원의 복원과 활용방안에 대한 학술발표가 있었다. 동국대 강석근 교수를 만나 양북면이 가진 문화자원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발굴해서 지역민과 관광객의 요구에 맞는 문화 활용 방안을 들어본다.
◆양북면을 대상으로 학술발표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경주에는 지금 원자력과 방폐물이 들어오고 그로인해 경주의 이미지가 긍정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다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원자력이 들어선 곳에 5~6개의 마을이 사라져 양북면과 양남면의 주민들은 고향땅을 버리고 이주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연구하면서 시작, 올해 들어 역사문화유적과 관련된 연구를 양북면에서 받아들였고, 양북면의 박차양 면장, 권영길 시의회 부의장, 정상준 보덕동장, 정창교 양북면 발전협의회장 등 지역에 살고계신 많은 분들이 특별한 관심을 갖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양북면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면...
인생에 있어 이번 연구만큼 좋은 역사문화를 주제로 한 테마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먼저 대왕암 연구는 대왕암이 ‘세계 해신(海神)들의 메카’라 규정하고 이러한 위상에 맞는 대왕암의 콘텐츠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기림사는 ‘힐링과 생명의 성지’가 될 수 있는 이론과 실천 방안을, 기림사 용연(龍淵)은 수험생들이 기도하는 공간으로 조성할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만파식적 연구는 국악연구자의 관점에서 만파식적이 가진 내재적 가치를 탐색하고 만파식적의 상품화 방안을, 문무왕 테마파크 연구는 테마파크의 위치를 제안하고 주요 컨셉과 프로그램을 제시했습니다.
◆기림사의 주제발표 가운데 새로운 내용이 있다면요...
경주의 동도칠괴 즉, 경주의 일곱 가지 괴이한 이야기 가운데 3개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 기림사입니다. 오색작약과 감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금오산 매월당의 북향화입니다. 오종수로 키워낸 오색작약인 오색화는 ‘청성잡기’와 ‘기림사사적’등에 따르면 오색 우담바라화로 죽은 사람을 살린 환생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하나의 칠괴인 오종수 감천은 기림사의 다섯 우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시대마다 이름이 달라지고 우물이 있던 장소도 바뀌었지만, 우물배치 방식과 감천 또는 감로수라는 우물의 이름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특히 기림사의 감천은 유천으로 아주 뛰어난 찻물로도 유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용연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무왕이 죽은 후 해룡이 되어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며 양북면 봉길리 수중릉에 장골됐고, 신문왕은 선왕인 문무대왕을 참배하기 위해 다니던 ‘신문왕 호국행차 길’로 왕궁과 이견대를 오갔습니다. 그 길 중간 지점에 기림사와 용연이 있습니다. 죽어서 용이 된 문무왕의 고사가 남은 길, 동해 용왕이 바친 흑옥대의 고사와 용이 되어 승천한 용연이 있는 이 길은 진정한 용의 길이었습니다. 신문왕 호국행차 길(월성-모차골-기림사-감은사-이견대)에서 기림사의 용연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위상을 가지며 재미난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간직한 곳이 됩니다. 잉어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등용문의 고사처럼 동해용이 받친 옥대속에 있던 작은 용, 즉 청룡이 생명수를 만나 등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국에는 용과 관련된 전설과 지역이 아주 많지만 기림사의 용연처럼 분명한 스토리와 역사성을 가진 장소는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주, 그것도 핵이라고 하는 치명적인 아픔이 있는 공간 인근에 가장 좋은 힐링의 메카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북면의 많은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이 있다면요...
대왕암을 비롯해 감은사. 골굴사, 이견대, 대종천, 용연, 동해까지 굵직한 문화의 많은 부분이 양북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구는 문무대왕 수중릉과 만파식적, 테마파크까지 양북 전반을 아우르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주제발표를 했던 기림사는 새로운 자료발굴과 활용방안을 최근의 힐링과 생명, 희망 세 가지를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의 자료들은 원자력발전소의 인위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이번의 중간보고 후 대책은
주제별 발표가 완성되고 나면 올 연말께 500페이지 분량의 책이 발간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연구를 토대로 했을 때 기림사와 한수원의 반응도 나쁘지 않으며, 특히 양북 주민들의 관심이 아주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양북면 발전협의회 이재천 자문위원은 예비역 준장 출신으로 양북이 고향입니다. 예전 재수생시절, 기림사에서 학업에 열중하다 학원 강의를 듣기 위해 서울로 가기 전 기림사 용연에서 목욕을 하고 올라간 뒤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한 기억이 있다며 스스로 그 용연의 감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물론 연구자료를 보고난 뒤 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지만요. 대구에 있는 갓바위는 약사여래불상과 사각모가 가진 유감주술을 토대로 해 연간 9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자 찾고 있습니다. 기림사의 용연도 용이 승천한 곳이자 또 하나의 용인 신라왕들이 다니던 곳입니다.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삼기팔괴 이전의 동도칠괴를 계속해서 탐색하고자 합니다. 그 가운데 불국영지와 백률송선은 이미 자료 해석을 마쳤고, 기림사의 감천과 오색작약은 이번에 정리됐으며, 매월당 김시습의 북향화와 안압지의 안압부평, 동도 옥적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전공이 불교문학인지라 불교와 한문, 지역을 알아야 접근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다년간 불교문학을 연구한 터라 경주의 역사문화 자원은 감동이 뒤따라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색화와 그 오색작약을 키우는 물, 감천 그리고 인문학을 통해 용연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가능했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경주에는 중요한 신라문화유산들이 많은데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어 감동을 주는 요소를 찾아내야 합니다. 역사에 근거한 내용을 토대로 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야 합니다.
강석근 교수는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교양교육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