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되면서 국회 인준이 사실상 불가능해짐에 따라 헌재소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 이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나 이 후보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상태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보고서 채택 무산을 놓고 여전히 상대방을 향해 책임을 전가할 뿐 사태 해결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보고서 채택 무산 시 남은 유일한 방법인 국회의장 직권상정 가능성마저 희박한 상황에서 이 후보자의 자진사퇴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명철회 외에는 달리 어쩔 방도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신의진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27일 논평을 내고 "찬반 논란이 있다면 새누리당이 주장한 것처럼 적격과 부적격 의견 모두를 경과보고서에 병기해서 국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신 대변인은 그러면서 "민주당 강기정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이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이 명시한 위원장으로서의 직무를 무시한 채 위법과 월권을 남발하고 있다"며 "강 위원장은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위원장 스스로가 이 후보자를 부적절 인물로 최종판결하는 월권을 할 뿐만 아니라 직접 나서서 이 후보자를 고발하겠다고까지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새누리당 역시 민주당을 비판하면서도 보고서 채택을 위한 인사청문특위 차원의 추가 협상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후보자의 결단만을 바라보며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친박(친박근혜)계 김재원 의원은 2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헌법재판관 6년을 지내고 헌법재판소의 수장을 하려는 분이라면 조그만 의혹이 제기되더라도 헌법재판 자체에 대한 정당성의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국민이 이렇게 (반대)한다면 스스로 거취를 분명히 정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그는 "청와대에서도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물꼬를 터줄 때가 됐다"며 자진사퇴 또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명철회 필요성을 거듭 제기했다.
앞서 심재철 최고위원도 지난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진사퇴가 이 후보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공개 요구한 바 있다.
민주당은 헌재소장 공백사태 장기화에 대해 여권을 비판하면서 역시 이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인사청문특위 위원인 박홍근 의원은 이날 비상대책위 회의에 참석, "이 후보자 본인은 국민들의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당장 사퇴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작금의 상황을 개인의 권력욕을 실현하거나 명예회복의 과정으로 본다면 엄청난 착각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또 헌재소장 공백 사태 장기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후보자 본인도, 추천권자인 이 대통령도, 또 추천을 협의했던 박근혜 당선인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도 이 상황을 앞 다투어 회피하려고 하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며 "조속히 결자해지하고 적합한 후보자를 추천해 소장의 공백기를 최소한으로 단축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헌재의 '벙커'라고 불리는 이 후보자 때문에 박 당선인이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발목이 잡혀있다"며 "이 후보자는 박 당선인의 발목을 그만잡고 놓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 수석대변인은 "국민들과 심지어 보수단체까지도 이 후보자의 용퇴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지금까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헌재 공백상태를 언제까지 방치할 셈인지 이 후보자의 무책임한 모습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 수석대변인은 "이 후보자는 이미 헌재소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신뢰와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태고 기관장으로서 능력을 평가하기 이전에 공직윤리가 부족한 인사로 판명되고 있다"며 "조속히 자진사퇴하기를 이 후보자께 간곡히 촉구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정 수석대변인은 새누리당에도 "박 당선인을 발목잡기 하는 건 민주당이 아니라 바로 이 후보자임을 깨닫고 자진사퇴를 적극 권고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야가 사실상 이 후보자 국회 비준을 포기하면서 헌재소장 공백 장기화의 해법은 본인의 자진사퇴나 이 같은 의사를 받아들이는 형식의 지명 철회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에 한층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