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와 야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안 문제를 둘러싸고 한 발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정국이 '강(强)대 강' 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을 제안한 데 이어 4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후퇴 불가' 입장을 재천명하자, 민주통합당은 "야당을 거수기로 여기고, 입법부를 시녀화하려는 오만한 태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초반부터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으로 국정 운영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야당 사이에 날카로운 설전까지 오가면서 냉랭한 분위기가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벼랑끝 대치국면이 박 대통령과 여야 모두에게 부담스러운데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의 주요쟁점도 대부분 해소되고 종합유선방송사업SO) 관할문제만 남겨둔 것으로 알려져 극적 타협가능성을 점치는 의견도 적지않다.
박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야당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정부조직법 개정안 논란의 핵심인 방송통신위원회의 SO 관할권 등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문제에 대해 전혀 양보할 뜻이 없음을 확실히했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가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며 "이것(핵심)이 빠진 미래창조과학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고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 부분은 국민을 위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새 정부 출범 일주일이 되도록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국정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면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고 야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문 발표 직후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도 지난 2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와 관련해 대통령-여야 지도부 간 청와대 회동을 제안했지만 야당이 거부한 데 대해 "대화보다는 본인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한 것 같다"며 비판을 이어갔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 1일과 3일 두 차례 기자회견을 갖고 2월 임시국회 회기 종료일인 5일까지 개정안을 처리해줄 것을 호소한 바 있다.
이에 야당도 박 대통령을 향해 "21세기판 유신독재"라는 등 날선 비판을 쏟아내며 맞서고 있다.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박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에 대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근본적인 문제는 (청와대가) 입법부를 시녀화하려는 것"이라면서 "(박 대통령이)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오만과 독선의 일방통행을 되풀이하겠다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정성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이번 박 대통령의 담화는 국회를 통법부로, 여당은 거수기, 야당은 거수기 보조자로 여기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매우 실망스럽다"며 "문득 5선 국회의원 경력을 지닌 박 대통령이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무시하며 국정을 운영할 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새삼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박기춘 원내대표도 "대통령의 담화는 누가 봐도 야당과 국민을 압박한 것"이라며 "이런 여론전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비판했다.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박 대통령과 야당간 충돌상황이 이처럼 한껏 격화되면서 극적 타결이 없는 한 정국 경색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이날 사퇴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새 정부가 진용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출범하는데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한편, 여야는 지난 3일 심야 협상을 통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SO 인·허가권과 법률 제.개정권의 미래부 이관 문제를 두고 타협점을 찾지 못해 최종 합의에는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