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사정기관 수장인 경찰청장에 이어 헌법기관장인 감사원장도 교체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면서 있으나마나한 고위직 임기제에 대한 회의론이 다시 일고 있는 가운데, 범 경제부처도 임기를 무시한 대폭적인 수장 물갈이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억지춘향식으로 마지못해 자진사퇴한 금융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중앙은행 총수인 한국은행 총재도 바꿔야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핵심 기관장을 마음대로 교체하는데 대해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 스스로 대선 공약을 깨는 셈인데다 특별한 결격사유없이 분위기 쇄신차원에서 사령탑을 물갈이를 했다는 여론이 확산될 경우 조직사기 저하는 물론 정권에 치명상인 부담을 줄수도 있다. 한은은 중앙은행으로서 소위 권력기관은 아니지만 통화정책과 외환정책등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 조직이다. 때문에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총재 임기를 4년으로 한은법에서 못박아두었다. 수장인 한은 총재는 다른 경제부처 장관급 인사와 달리 말 한마디 한마디가 투자시장을 출렁이게 만드는데다 1998년 한은 독립성이 법으로 보장된 탓에 사령탑이 임기 중 교체된 사례가 없었다.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김중수 현 총재도 유임이 확정적인 것으로 관측돼 왔다. 하지만 ‘국정철학 공유’를 강조한 박 대통령의 인사 기준이 자연스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쪽으로 이어지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껄끄러운 김 총재도 퇴진 수순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냐는 분석이 한은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김 총재의 임기는 내년 3월에 끝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MB맨이란 꼬리표 탓에 현 정권과 '국정철학'을 공유하긴 어렵지 않냐는 판단에서다. 업무능력와 처신문제도 합격점을 주기는 어렵다는게 청와대의 평가다. 김총재는 지나친 눈치작전으로 기준금리 카드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면서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직원 사찰 논란, 잦은 해외출장 등으로 구설수도 따르고 있다. 조직 내부의 거부 반응도 김 총재로서는 부담이다. 지난해 한은 노조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재의 취임기간 중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진전됐다'는 평가는 2.1%에 불과한 반면 '후퇴했다'는 응답은 81%에 달했다. 나아가 김 총재는 글로벌파이낸스가 평가하고 CNBC가 보도한 세계 최악의 중앙은행 총재 13명 중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결국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죄목’을 씌워 청와대가 전격 경질을 요구할수도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달에는 3대 경제권력기관중 국세청을 제외한 공정위와 금융당국 사령탑이 자진사퇴했다. 이 세 곳은 박 대통령이 그동안 경제공약으로 내건 가계부채 해소, 경제민주화,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친위부대 성격을 갖는다. 임명권자의 재신임을 묻는다는 차원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김동수 공정위원장, 양대 장관급 위원장이 청와대를 거쳐 인수위원회로 사의 메시지를 날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결국 알아서 나가라는 뜻으로 해석될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임기는 모두 내년 1월까지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승리후 금융당국의 하우스푸어 대책을 공개 비판하면서 퇴진 의사를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덩달아 역시 잔여임기를 1년 남겨둔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헌법에 명시된 핵심 정부기관으로 부총리급 의전성 예우를 받는 감사원장도 최근 흔들거리고 있다. 감사원장은 헌법상 임기가 4년으로 보장된데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발빠르게 4대강 감사결과를 내놓으면서 새 정부의 부담을 덜어준 덕에 유임 가능성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임기보장 약속을 스스로 깨면서 경찰청장의 계급장을 뗀 이후 감사원장도 교체하는 쪽으로 추가 기울어가고 있다.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감사원장의 헌법상 임기는 4년이다. 2011년 3월 취임한 양건 원장의 임기는 아직 2년 정도 남아 있다. 양 원장이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강제적인 교체는 불가능하다. 청와대 일각에선 내심 양 원장의 결단을 기대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 감찰기구인 감사원은 국정 전반의 개혁을 뒷받침할 중추 세력인 만큼 박 대통령과 국정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박 대통령은 임기 2년중 1년이 남은 김기용 경찰청장의 제복을 벗겼다. 국가정보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과 함께 5대 권력기관장이라는 감사원장까지 교체해 한국 권력지도의 새 그림을 그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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