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공식석상에서의 연설이나 공개 발언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더구나 예기치 않게 발생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보이는 반응과 발언 수위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극도의 보안을 중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목이 잡히면서 국정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었고 장·차관급 인사들의 잇단 낙마로 박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폭발할 법한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반응은 한번도 노출된 적이 없다.
청와대 지근 거리에서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은 하나같이 박 대통령이 화난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원래 말수도 많지 않고 조용조용하게 말하는 스타일이라 회의 중에 큰 소리가 나오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다"고 전했다.
지난 21일 '별장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중도하차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진노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대통령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라고 일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5일이면 취임 한달째를 맞는 박 대통령이 그나마 속내를 드러낸 것은 지난 4일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대국민 담화'에서다.
정부조직개편을 위한 여야 간 조속한 합의를 촉구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내내 박 대통령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목소리의 톤은 평소 때 보다 한껏 고조돼 있었다.
여러차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했고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과 의무를 말하는 부분에서는 손으로 가슴을 치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 또한 정부조직개편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자 하는 박 대통령의 결의에 찬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지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의도된 연출이라는 것이다.
이런 성격의 박 대통령을 청와대 참모진들이 '오히려 무서워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집무실로 불려간 수석들이 얼굴이 하얗게 돼서 나오는 걸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기에 저럴까 궁금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친박(박근혜)계 한 재선의원은 "박 대통령은 당에 있을 때도 뭔가 잘못된 일이 있으면 '왜 그러셨어요' 말 한마디에 3,4선의 의원들도 오금을 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많은 말도 필요없고 화를 내지도 않지만 몸에 밴 특유의 카리스마와 분위기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설명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상당하다. 사실 뭘 묻고 싶어도 그런 분위기에 위축돼 말도 못붙일 때가 있다"고 했다.
현 청와대 인사 중 박 대통령에게 직언할 사람이 없고 그런 분위기도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