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8일 오전(현지시간) 미 상·하원의회 합동회의 연설에 나서 올해 6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을 평가하고 향후 양국관계 발전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이날 연설에서 최근 북한의 잇단 도발 위협에 따른 한미 간의 대북(對北)정책 공조와 함께 동북아시아 역내 현안 및 글로벌 이슈에서의 협력 등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연설 첫머리에서 미 포토맥 강변 한국전쟁 기념공원 참전기념비에 새겨진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국가의 부름에 응한 미국의 아들과 딸들에게 미국의 경의를 표한다"는 내용의 비문을 인용, 한미동맹 6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우리나라가 오늘날과 같은 발전상을 이루기까지 미국의 많은 도움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친 참전용사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거듭 사의(謝意)를 했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존 코니어스, 찰스 랑겔, 샘 존슨, 하워드 코블 등 미 상·하원 의원 가운데 한국전에 참전했던 4명의 이름을 거명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1953년 6·25전쟁의 총성이 멈췄을 당시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의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이제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자 무역규모 8위의 국가로 성장했다"며 "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국민이 존경스럽고 그들의 대통령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긴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3대(代)'가 차례로 한국전쟁 참전과 주한미군 복무 등을 한 데이비드 모건 중령 일가를 소개하면서 "모건 가족은 한미동맹 60년의 산증인"이라고도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진 연설에선 △한반도 평화와 통일기반 구축 △동북아 지역 평화협력 체제 구축 △지구촌 이웃들의 평화·번영에 기여 등 세 가지를 한미동맹을 '21세기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비전과 목표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핵무기 없는 세상' 비전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한 한미 간 원자력협정 개정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올해로 발효 1주년을 맞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한미동맹을 경제를 포함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 뒤 "이에 더해 현재 미 의회에 계류 중인 한국에 대한 '전문직 비자쿼터'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양국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FTA로 인해 양국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입는다는 것을 체감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관심을 당부했다.
전날 이뤄진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각 현안에 대한 미 정부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데 이어, 이날은 미 의회를 상대로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북한 문제와 관련, 자신의 대북정책 패러다임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견지해가겠다고 강조하면서 비무장지대(DMZ) 내 '세계평화공원' 조성 구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박 대통령은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이 다자(多者)간 대화 프로세스를 시작할 때가 됐다"며 자신이 '서울 프로세스'라고 이름붙인, "환경, 재난구조, 원자력안전, 테러 대응 등 연성 이슈에서부터 대화와 협력을 통해 상호 신뢰를 쌓고, 점차 다른 분야까지 협력의 범위를 넓혀가는" 내용의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의 초청으로 이뤄진 박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약 30분간 영어로 진행됐다.
박 대통령의 이번 상·하원 합동 연설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1954년 이승만 전 대통령, 1989년 노태우 전 대통령,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여섯 번째다.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은 통상 '국빈 방문'인 경우 외국 정상 등에게 주어지는 의전 절차임을 감안할 때 '공식 실무방문'차 미국을 찾은 박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 나선 것은 '파격적 대우'란 평을 듣고 있다.
특히 같은 나라 정상이 1년6개월여의 짧은 간격으로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한 사례는 1943년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에 이어 1945년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가 연설 기회를 가진 뒤 처음 있는 일이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을 수행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박 대통령에 대한 미 의회의 연설 초청을 통해 "우리나라 새 정부에 대한 미국 측의 기대감이나 호의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