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 가보니 여야가 30년 후 국가 미래를 논의하더라.’ 정홍원 총리가 28일 국정원 대선 개입의혹을 놓고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있는 정치권을 상대로 따끔한 훈수를 뒀다. 여야 정치권이 국정원 댓글 사건을 놓고 ‘대선불복’, ‘헌법 불복’ 등의 기치를 들고 상대방의 책임을 주장하는 등 끝없는 정쟁을 일삼으며 경제 관련 법안 처리 등 민생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특히 일본의 발호에 따른 동북아 정세의 급변, 후발국들의 거센 추격 등 대내외적 도전에 직면한 대한민국호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당리당략에 갇혀 있는 정치권을 ‘핀란드 정치인’에 빗대 에둘러 꼬집었다. 민생을 위해 정치권이 진정성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 총리가 이날 부임 후 첫 발표한 4페이지 분량의 대국민 담화문 내용 중 가장 관심을 끄는 문구들은 ‘핀란드의 미래위원회’, ‘국정원 댓글 의혹 규명’, ‘민생 법안’, ‘노사간 협력’ 등이다. 최근 노르웨이와 핀란드 등을 돌아보고 귀국한 정 총리가 언급한 ‘핀란드 미래위원회’는 무엇보다 우리 정치권을 바라보는 정 총리의 불편한 심기를 가늠하게 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진다. 정 총리는 담화문에서 “지난주 핀란드 방문 기회에 핀란드 국회의장으로부터 여야 합동으로 미래위원회를 구성해 30년 후 국가 미래를 논의한다는 말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가 핀란드 정치권을 언급한 것은 핀란드 정치인들은 국가의 진로를 긴 호흡으로 고민하는 데 비해, 우리는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등 국가의 미래를 소홀히 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비판으로 풀이된다. 정 총리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엄정한 진상 규명 의지를 강조한 것도 이러한 시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총리가 국정원 댓글 의혹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약속할 테니, 여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정쟁을 뒤로 하고 최고의 복지라는 일자리 만들기부터 챙겨달라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지난 대선을 비롯한 선거 때마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민생 법안 처리를 지금처럼 외면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며 이중적인 행태가 아니냐는 아쉬움으로도 해석된다. 정 총리는 그러면서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관광진흥법안이 입법화되면 4만7천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또 외국인 투자촉진법안만 통과돼도 2조3000억원 규모의 합작공장 착공으로 1만 4000여 명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는 등 정치권을 압박했다. 정 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정치권이 '대의명분'을 앞세우며 국정원 댓글을 둘러싼 난타전을 벌이고 있지만, 결국 서민들에게는 ‘밥이 하늘이 아니겠냐’는 호소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 총리의 담화문이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대립에 오히려 기름을 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논란의 '종착역'이 아니라 또 다른 논란의'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고개를 든다. 담화문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여야 정치권 등의 협조를 구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의 엄정한 수사를 거듭 강조하며 수사팀장 교체 등 일련의 흐름을 주시해온 민주당을 사실상 겨냥하고 기 때문이다. 이는 정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야당은 그동안 대의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은 ‘선거’임을 강조하며 국정원의 선거 개입이 헌법적 가치를 유린하는 행위임을 비판해왔고, 여권은 이에 대해 하루빨리 민생현안으로 복귀할 것을 요구해왔다. 총리의 이날 담화는 여야가 하루속히 정치본연의 역할에 집중, 민생을 적극적으로 챙겨달라는 강한 메세지를 던진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