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야단스럽지 않은 비가 가만히 묻는 안부처럼 내렸다. 차는 경주의 남쪽을 향했다. 남산은 자욱한 비안개에 젖었다. 저 오랜 산의 기척이 날숨처럼 터져 나와 뽀얀 안개에 쌓여 있었다. 긴 한숨 같은 비안개를 뚫고 가는 동안 어떤 신령스러움이 차체를 감싸는 것 같았다. 내남면 박달리 도진마을은 그 이름부터가 옛날의 소박함을 간직한 곳이다. 가랑비에 구부린 등이 고스란히 젖고 있는 불지산은 도진마을을 아기처럼 보듬고 있었다. 선원 부근에 이르자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이 나왔다. 약 1킬로미터의 비포장도로는 불지산을 올려보며 맨 살이 붉었다. ■출가하기까지 아주 편안한 얼굴의 키가 큰 삐야바니니 비구니스님이 합장을 하며 맞아 주었다. 가을비의 운무가 서린 스님의 모습은 친근하면서도 고적했다.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정적이 흐르는 저 스님, 어디서부터 무엇으로 여기 서 있는가 궁금했다. 스님은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 경성대학에서 한국창작무용을 전공했다. 이후 큰 무대에서 맘껏 춤을 추며, 달콤한 사랑에도 빠졌다. 잘 영근 꿈으로 뜨거운 한 때를 보냈다. 서른을 내다보는 나이에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잠시 일을 도왔다. 그때 한 스님이 음식을 들고는 한사코 계산을 하겠다는 것을 마다하자 사주를 봐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중이 되어 출가할 운명이라 했다. 탁발승의 말을 듣고 어찌된 일인지 큰 갈등 없이 출가를 했다. 젊음의 한 가운데, 가장 성성한 그 때, 스님의 나이 29세였다. 외삼촌이 이미 불교에 귀의한 상태여서 가족들의 반대도 적었다. 스님이 된 외삼촌은 오래 전 스님이 불교에 귀의하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조계종의 어느 절에서 일 년 간 비구니가 되어 수행을 했다. 이후 초기불교의 생생한 공부가 그리웠다. 미얀마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비행기 삯을 마련하고 외삼촌 스님이 계시는 미얀마로 향했다. 2년 6개월 간 미얀마에서 수행을 하고 1년 간 소임을 살았다. 이후 스리랑카에서 석사 3년 교학공부를 하고 한국에 왔다가 지금의 선원장을 맡게 되었다. ■마하보디선원과의 인연 경주에 선원을 세운 이는 1대 선원장 냐나로까 스님이다. 스님의 속가(俗家) 외삼촌으로 태국의 남방불교를 한국에 전파하기 위해 두루 물색하던 중 신라불교의 유적이 도처에 널린 경주를 택하게 되었다. 2002년부터 내남면 박달 2리 970번지 불지산자락에서 불사를 시작해 선방 1동, 요사채 1동, 공양간 1동을 갖추었다. 수행자들에게 테라와다 불교의 위빠사나와 사마타 수행, 그리고 교학을 전법하시던 냐나로까 스님은 올해 1월에 입멸하셨다. 삐야바니니 비구니스님은 2대 선원장으로 테라와다 불교를 계승을 하고 있다. 스님의 법명인 '삐야바니니'는 '부드러운 불법의 소리'란 뜻이다. 스님은 우 얀아로까 사야도 스님의 지도를 받아 미얀마에서 우기의 우안거(憂顔居)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직지사 말사에서 행자생활을 했다. 삐야바니니 스님은 "한국의 절에서 중노릇을 해봤지만 한국불교의 체계적인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다" 며 "설혹 한국불교를 공부했다하더라도 교리를 대하는 운영방법론과 초기불교의 교학과 신도들 가르침은 현저하게 다르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초기불교 선원은 부산, 대구, 대전, 김해, 하동에 있다. 한 가지 특징은 테라와다의 모든 재정은 공개적으로 밝혀지며 회원들의 회비로 운용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3대 종단을 비롯해 여타 종교재단의 재정투명성은 오래 전부터 사회문제시 되어왔다. 요즘 세월호 사건으로 밝혀진 종교계의 일탈이 대표적인 예다. 감히 우리 서민들은 구경도 못해본 경악할 수치의 헌금이 사적인 불법의 용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국가든 종교든 정직이 가장 큰 도덕적 규범으로 뿌리 내려야한다. IT산업도 중국과 인도의 거대한 발전에 밀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21세기 중반을 못 넘기고 침몰의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사회 전반이 허허실실, 좋은 게 좋다며 이리 덮고 저리 숨기며 부패의 늪을 기회의 땅으로 착각하고 있다. 부패가 진행될수록 빈부의 격차는 격심해지며 반사회적 혼란은 범죄율을 높인다. 정말 바른 정신 잃고 이대로 가다가는, 크게 후회하는 국가의 눈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지금 알아차리고 있는가 마하보디선원이 경주 내남에 선원이 들어선 지 16년이 되었다. 담마흘(법당)은 남방불교형식으로 단정했다. 남방불교는 상좌부 불교, 즉 소승불교라 한다. '위'는 세상만물을, '빠사'는 '꿰뚫어보다'는 뜻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만물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초기불교를 전수하신다고 했다. 우리나라 불교는 날이 갈수록 복 받기만을 염원하는 기복신앙으로 변질되고 있다. 또 전국 곳곳에 수많은 무속인들이 크고 작은 절을 지어 순박한 사람들을 변질시키고 있다. 버젓이 불교를 내세우며 빗대어 갖은 미신적 행태를 일삼는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불교의 교리이고 불법인양 떠받들고 따르는 추세다. 반면 남방불교는 초기불교의 원칙적인 가르침을 따른다.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천수경 등 불경의 이름은 알지만 대다수 교도들이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스님은 곱고 다정한 음성으로 이 낯선 불교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초기불교의 '니까야 경전'은 일반인 어느 누가 읽어도 이해가 쉬워요. 경전의 내용은 현실에 그대로 전이되어 논리적이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교리입니다. '니까야 경전'은 읽는 내내 혼돈이나 혼란이 없으며 읽음과 느낌이 합일하여 경전과의 일체감을 가져옵니다. 마음이 편해지고 모든 잘못이 반성되는 특별한 체험을 느낍니다. 진정한 참회의 교학은 나쁨이 사라진 마음에 자리하고, 누구의 가르침을 받기보다 스스로 가르침을 깨우친 거지요. 그래서 끝내 '니까야 경전'은 자신의 것이 되고 말아요. '위빠사나 수행'이란 사마디(마음집중)와 삿디(알아차림)를 통하여 일어난 현상들의 사라짐을 보면서 무상무아(無常無我)의 고(苦)를 확인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혜를 얻고자하는 이에게 열려있는 종교로 깨달음 또한 그 지혜의 길에서 찾는다고 한다. 지난 해 5월 스리랑카에서 계를 받은 스님은 우리나라 남방불교 비구니 1호다. 남방불교에서도 오래 전 숱한 어려움으로 비구니가 사라졌다. 스님들이 입는 가사도 나라별로 다르다. 미얀마 스리랑카에서는 주황색이며 태국은 겨자색, 금색에 오렌지색 가사도 있다. 한국대승불교는 먹색이다. 세상의 모든 색을 섞으면 먹색이 나온다고 한다. 먹색이라 부르는 회색이 우리가 흔히 보는 스님의 가사다.■명상걷기 '나와의 화해' 스님은 종교와 종파를 넘어선 열린 자세로 한국대승불교 스님, 신부님과 함께 명상에 드시기도 한다. 반월성 일대의 '걷기명상'으로 인연이 닿는다면 목사님과 수녀님과도 함께 하길 원했다. '걷기 명상'의 주제는 '나와의 화해'다. 오는 26일 오후5시 반월성 디지털홍보관에서 출발해 대능원 뒤편의 '커피 볶는 마노'에서 끝마침을 한다. 삐야바니니 비구니스님의 테라와다 초기불교와 조계종 현불사 주지스님의 한국대승불교, 천주교 알버트신부님의 강론을 들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매주 수요일 10여명이 모여 초기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여름청소년명상캠프'도 열고 있다.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되 집단놀이상담, 영화감상토론, 음식 만들기 등을 하며 1년 후의 자기 자신에게 편지쓰기 프로그램도 병행한다. 마지막으로 스님에게 마음에 새긴 경전 한 구절을 부탁했다.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이 '그대 지금 깨어있는가?'였습니다. 방일하지 말고 수행에 정진하라는 이 마지막 열반송을 한 시도 잊지 않고 간직합니다. 기자님도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자기 자신을 의지처 삼아 마음을 거두어 들이셔요. 모든 답은 오로지 자아, 자신에게 있습니다" 밖에 나오자 멈췄던 가을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정성이 가득한 점심공양을 스님과 함께하고 물안개에 젖은 절집을 나섰다. 오는 길 내내 묵은 차창의 때를 씻느라 빗줄기가 거세졌다. 마치 사는 데 쫓겨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 본지 까마득한 나를 나무라듯. 시내로 들어서자 바람이 불지 않아 꼿꼿이 내리던 비는 더욱 굵어져 회초리처럼 내 차를 때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우산을 펼치자 와르르, 기다렸다는 듯이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 마치 죽비처럼 그렇게 들렸다. 김희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