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사회는 잇따라 나온 외생적 충격에 시달린다. 금융 위기, 원자재 값의 가파른 상승, 주요 국가들의 경기 침체와 같은 충격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을뿐더러 다른 나라들보다 무역의존도가 훨씬 높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현 정권의 비효과적 대응이 시민들의 괴로움을 늘린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런 충격들을 원초적으로 줄일 여지는 거의 없었다. 이제 세계적 상황은 대체로 안정되어 큰 경제적 파탄은 피한 듯하다. 비우량 저당(subprime mortgage)의 위험도에 대한 부실한 평가로 시작된 금융 위기는 중앙은행들의 개입으로 상당히 가라앉았다. 금융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전망이 아주 어두운 것도 아니다. 원자재 값도 안정되고 있다. 민중주의적 정부들이 자국의 곡물 값을 안정시킨다고 다투어 시행한 곡물 수출 금지나 수출 관세는 철폐되었다. 예측대로, 그런 민중주의적 조치들은 맨 먼저 자국 농민들에게 손실을 강요했고 자국 농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큰 걱정과 어려움을 부른 석유 값도 고비를 넘긴 듯하다. 애초에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서 오른 터라, 석유 값은 아직 높고 크게 떨어질 가능성도 작지만, 다시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이 큰 것도 아니다. 시장의 가격 기구가 움직인 덕분이다. 물론 지금의 불안한 안정은 예상치 못한 요인에 의해 쉽게 깨질 수 있다. 주요 농업국에서의 기후 이상이나 주요 산유국에서의 재해는 이내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정치적 분쟁이나 전쟁과 같은 인위적 재앙이다. 지금 그런 재앙의 위험이 가장 큰 곳은 이란이다. 이란은 아주 중요한 산유국일 뿐 아니라 석유의 대부분이 생산되는 중동에 자리잡아서 중동의 정세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 자연히, 이란에서 나오는 위기는 석유 공급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애썼다. 이란은 평화적 목적으로 핵 물질을 생산한다고 줄곧 주장했지만, 그런 주장은 곧이 들리지 않는다. 이제 이란은 한 해에서 네 해 사이에 핵무기 생산에서 '돌아올 수 없는 지점'(point of no return) 이르리라고 서방의 정보 기관들은 예측한다. 그 동안 국제 사회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막으려 애써왔지만, 아직까지 성과를 얻지 못했다. 협상을 주도한 유럽은 정치적 의지가 약하다. 미국은 최근 정치적 영향력을 많이 잃어서 이란을 압박할 여력이 크지 않다. 러시아와 중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해서 오히려 이란을 두둔한다. 이런 상황은 이스라엘을 아주 곤혹스러운 처지로 몬다. 이란 핵무기의 첫 목표는 이스라엘이다. 이란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고 줄곧 위협해왔다. 그들은 회교 근본주의자들이어서, 핵무기를 갖게 되면,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이스라엘에 대해 쓸 가능성이 무척 높다. 그들에겐 보복의 위협에 바탕을 둔 '억지'(deterrence)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이스라엘로서는 이란이 핵무기를 완성하기 전에 핵시설들을 파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스라엘이 실제로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이란이 러시아로부터 사들인 최신형 대공방어망이 설치되기 전에 공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즉 이스라엘이 곧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은 그런 선택의 가능성을 암시해왔다. 이스라엘은 1981년에 이라크 오시락의 핵발전소를 완성 직전에 공습으로 파괴했다. 얼마 전 이스라엘은 전투기들을 동원해서 원거리 공습에 필요한 공중급유 훈련을 했다. 이 훈련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에게 열린 '정치적 창'(political window)은 2008년 11월 5일에서 2009년 1월 19일이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 기간의 공습은 1) 유럽 주도의 협상에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는 명분을 얻고 2) 11월 4일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3) 이스라엘의 행동에 제동을 걸 뜻도, 힘도 작은 조지 부시 정권의 암묵적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4) 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서는 내년 1월 20일 전에 일을끝내서 새 행정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란의 핵무기 관련 시설들을 공습으로 파괴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원체 거리가 먼 데다가, 이라크 영공을 지나야 하고, 시설들은 분산되었고 지하에 지어졌으며, 이스라엘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시설들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란의 핵시설들을 충분히 파괴하지 못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그럴 경우, 이스라엘은 더욱 난처해진다. 이란이 재래식 무기로 반격하는 것이야 각오한 바지만, 뒤에 핵무기를 갖춘 이란의 공격 가능성은 더욱 확실해진다. 따라서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공습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스라엘은 이내 핵무기로 다시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이란이나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계가 걱정해야 할 일이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로 이란의 핵시설들을 공격했을 때, 나올 사태는 예측하기 어렵다. 정치적. 경제적 충격은 당연히 클 것이고 크고 작은 부차적 효과들이 나올 것이다. 방사능에 의한 환경 오염, 중동 지역의 정치적 분쟁 격화, 테러의 발생, 석유의 공급 부족과 같은 일들이 걷잡을 수 없이 터질 것이다. 외생적 충격에 특히 취약한 우리로선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미국도 상황의 긴박성을 인식하고 유럽에 맡겨두었던 협상에 고위 관리를 보내 참여했고 이란과의 직접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서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다툼에 말려들어 난처한 처지에 놓이는 것을 피하기도 바쁘다. 그러나 큰 위기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예측해보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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