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배우 중 최초로 아카데미(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94세 일기로 별세했다.카리브해 바하마의 체스터 쿠퍼 부총리는 7일(현지시간) 페이스북에 "우리는 아이콘이자 영웅, 멘토, 전사, 국보를 잃었다"며 포이티어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1927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나 바하마 토마토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5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연극 무대에 서다 1950년 영화 `노웨이아웃`(No Way Out)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인종주의자 백인 죄수 동료(토니 커티스)와의 탈주극을 그린 1958년작 `흑과 백`(The Defiant Ones)을 포함해 포이티어의 출연작 중엔 흑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1967년작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에선 백인 여성과 사랑에 빠진 의사를 연기했고, 같은 해 `밤의 열기 속에서`(In The Heat Of The Night)에선 인종차별 속에서 살인 수사를 하는 경찰 역할을 맡았다.영국 빈민촌 학교에 부임한 아프리카 출신 교사로 출연한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매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포이티어는 `흑과 백`으로 1958년 흑인 배우 중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이어 6년 후 1964년 `들판의 백합`(Lilies of the Field)으로 흑인 배우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의 역사를 썼다.이밖에 골든글로브와 영국아카데미상, 그래미상 등도 수상했다. 영화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에게 2002년 아카데미 공로상이 주어졌으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09년 그에게 민간인 최고 영예인 자유 메달을 걸어주기도 했다. 미국·바하마 국적을 모두 가진 포이티어는 1997∼2007년 주일본 바하마대사, 2002∼2007년 주유네스코 바하마대사를 맡은 이력도 있다. 그는 `최초` 수식어를 달고 살았지만 자신은 `최초`보다는 그저 이미지에 맞는 역할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포이티어는 부도덕하거나 잔인한 역할은 맡을 생각이 없었다면서 평생 그런 역할은 단 한 번도 맡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자신의 가치를 부정적으로 반영하는" 그런 역할을 결코 맡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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