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외가에 가면 마을 뒷산에 봄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그중에 철쭉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것을 꺾기 위해 친구들과 뒷산을 오르곤 했다.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어린 여자 아이들끼리만 험한 산중을 찾는 게 불안했는지, " 산에 철쭉 꺾으러 가면 문둥이가 잡아간다" 라고 주의를 줬다.   그때 할머니 말씀 때문인지 철쭉꽃이 핀 곳엔 꼭 나병 환자가 있을 것이란 생각도 지울 순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그 말씀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철쭉의 유혹에 홀리곤 했다. 날마다 시피 그 꽃을 꺾으러 또래들과 어울렸다.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산 속을 헤맸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지춤을 올리며 동굴에서 나오는 한 남자를 멀찍이서 발견했다. 이 때 필자가," 문둥이다!" 라고 외쳤다.   그러자 계집아이들은 혼비백산하여 산비탈을 뛰었다. 훗날 돌이켜보니 나무꾼이 동굴 속에서 급히 용변을 보고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것이다. 평소 할머니의 기우에 의한 말씀이 귀에 젖은 탓에 나무꾼을 문둥이로 오해 한 듯하다.  수 년 전 소록도를 간 적 있다. 그곳을 직접 방문해 보니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과 고통을 비로소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질시와 냉대,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짐승 같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피부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가족과의 격리였다. 1960년 대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은 부모로서 자녀를 양육할 권리마저 빼앗겼다. 아동 보육소에 아이를 맡기고 한 달에 한번 면회가 허용됐을 뿐이다.   그나마 2km 떨어진 양 편에 부모와 자식이 한 줄로 늘어서서 서로 멀뚱히 바라보아야만 했다. 병을 전염 시킨다는 이유에 의해서였다.   사랑하는 자식을 단 한 번도 자신의 품안에 따뜻이 품어보지 못했던 그 심경을 소록도에서 헤아리니 필자도 모르게 울컥했다.   어디 이뿐이랴. 강제로 이들에게 정관 수술 및 낙태도 시켰으며 걸핏하면 폭행도 가했잖은가.  소록도가 한센병 환자들의 격리 장소가 된 것은 1916년 일제 강점기 때다. 이 섬에 한센병을 치료할 자혜의원을 세운 일본이다.   1960년도 초엔 이곳에 수용된 환자가 무려 6,000명에 이르기도 했단다. 소록도를 찾으며 이 길이 한센병 환자들에게 설움과 고통의 첫 관문이었다는 생각에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이들이 소록도를 찾아오려면 벌교역에서 내려야 했는데 그 당시 나병 환자라고 경계 하여 버스도 태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해서 그곳서 소록도까지 50여km를 걸었다고 하니 그들에 대한 주위의 혐오감을 짐작할 만하다.   또한 문드러진 성치 않은 몸으로 소록도 주변 섬을 메워 약 990만㎡(330 만평)의 간척지 개간을 하였다. 이로보아 자신들만의 천국을 가꾸겠다는 의지가 참으로 눈물겹다.   2,500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성치 않은 손마다 삽자루와 괭이만으로 3년간이나 깊은 바닷길 1,500m를 메웠다고 하니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완공을 앞두고 인근 주민들에 의해 무참히 쫓겨났다. 소설가 이청준은 훗날 이 이야기를 소설 `당신들의 천국`으로 남겼다.   1957년도엔 경남 사천의 섬 개간에 나섰던 한센병 환자 100여 명이 이웃 섬 주민들의 삽과 죽창에 맞아 그 중 28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은 요즘도 떠올리면 너무나 안타깝고 그들이 마냥 불쌍하다.   그들인들 한센병 환자가 되고 싶었겠는가. 어느 누구인들 죽음과 질병을 비껴갈 수 있으랴.   그럼에도 당시 그들의 존재를 한 인간으로서 인식하지 않고 흡사 벌레 보듯 멸시와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 병은 유전병이 아니다. 치료만 잘 하면 치유되는 병이다. 지금은 나병 환자도 드물고 설령 걸려도 완치가 거의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센병은 전염병이 아닌 어찌 보면 그 시절 빈곤에서 비롯된 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젠가 한승수 전前 총리가 소록도 병원 개원 93주년을 맞아 기념식에 참석해 한센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정부의 첫 공식적인 뒤늦은 사과를 전했다.   그 사과를 거론하려니 한센병 시인 한하운의 `전라도 길` 이라는 시가 문득 생각난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 끼리 반갑다/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 생략>한센병 환자들의 비통하고 처절한 심정을 시로 노래한 시인 한하운이다. 이 시를 떠올리노라니 모처럼 오른 마을 뒷산에 피어있는 철쭉꽃이 새삼 인상 깊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그 꽃을 대하자 갑자기 어린 시절 할머니께 들은 흉물스런 한센병 환자들 모습이 꽃 위에 오버랩 되었다.   뭉툭한 손에 철쭉꽃을 꺾어들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헤벌죽`하게 웃으며 꽃무리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것은 어인일일까. 오늘따라 왠지 철쭉꽃이 무척이나 애처롭게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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